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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위징(魏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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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위징(魏徵)
  • 전민일보
  • 승인 2013.03.14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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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위징(魏徵)’, 세조(世祖)는 신숙주(申叔舟)를 이렇게 칭했다. 위징이 누구인가.
위징은 학자로서의 업적도 뛰어났지만 그를 역사에 남긴 것은 직간(直諫)에 있다. 절대권력을 소유한 황제를 분노케 하는 말을 하면서도 그는 조금도 흔들림이 없었다. 당태종(唐太宗)이 중국 역대황제의 모범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것을 참아내면서 자신을 바로 잡아간데 있다.
 그래서일까. 당태종은 위징이 죽자 ‘짐(朕)이 이제 한 거울을 잃었노라.’고 탄식하고 있다.
신숙주와 위징. 그들은 정말 닮았을까.
 신숙주가 죽던 날, 실록(實錄)은 그를 총명하고 타인에게 관대했으며 외교관으로서의 역량도 출중한 경세가로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사관(史官)은 말미에 중요한 말을 덧붙이고 있으니 “그러나 세조를 섬김에는 승순(承順)만을 힘썼고, 예종조(睿宗朝)에는 형정(刑政)이 공정함을 잃었는데 광구(匡救) 한 바가 없었으니, 이것이 그의 단점이다. 은권(恩眷)이 바야흐로 성하였으나 자신이 유설(??)의 욕(辱)을 만났고, 죽은 지 얼마 되지 아니하여 신정도 또한 베임을 당했으니, 슬퍼할진저!” 라고 얘기하고 있다. 여기서 유의할 표현이 나온다.
 ‘세조를 섬김에는 승순만을 힘썼고’라는 구절이다. 이 표현 속에서 위징의 모습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세조가 신숙주의 학문만을 보고 ‘나의 위징’이라 칭했다면 모를까 전반적인 삶의 궤적은 맞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서 유추해볼 수 있는 것은, 세조가 자신에게 승순(承順)한 신숙주를 억지로라도 위징으로 보고 싶어 했던 것은 아닐까하는 점이다.
 불행한 군주인 세조에게는 위징에 비견할 만한 신하가 없기 때문이다. 사육신(死六臣)을 비롯해 세조가 죽인 수많은 사람들의 핏 값을 넘어서 그에게 직언을 할 신하가 과연 누가 있었겠는가. 성리학(性理學)을 건국이념으로 내세운 조선에서 사육신이 패배한 것은 정의(正義)의 몰락을 의미한다. [사기(史記)]를 쓴 사마천(司馬遷)의 고민처럼 현실에서 승리하는 것이 항상 선(善)은 아니었던 것이다. 오히려 불의(不義)와 악(惡)이 승리하는 것을 더 많이 보게 되곤 한다. 사마천이 [사기열전(史記列傳)]의 제일 첫 머리에 백이숙제(伯夷叔齊)를 언급한 것도 사가(史家)로서 가지는 그런 고민에 있었다. 역사는 그렇게 패자를 승자로 부활시키게 된다. 사육신과 신숙주의 운명도 다르지 않다. 대역무도한 역적으로 기록된 사육신은 시간이 지날수록 충절의 표상이 되고 경세가 신숙주는 어느 덧 변절자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것이다. 신숙주와 사육신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극명하게 엇갈리는 장면이 실록에 나온다. 세종실록(世宗實錄)에서부터 보이는 신숙주에 대한 기사는 헌종(憲宗) 11년 11월 9일자로 끝이 나는데 그에 대한 1,890번째 기사다. 신숙주가 언급된 마지막 기사에서, 세조의 후손인 헌종은 신하들과 이런 얘기를 나눈다.
 “영춘헌(迎春軒)에서 야대(夜對)하였다.[갱장록(羹墻錄)]을 강독(講讀)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신숙주는 어찌하여 육신(六臣)이 한 일을 하지 않았는가?” 하매, 승지 이시우(李時愚)가 말하기를, “육신은 명절(名節)이 실로 백세(百世)에 특립(特立)한 무리인데, 어찌 사람마다 여기에 미칠 수 있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장하다, 육신의 절개여!”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자기를 버리고 남을 따르는 것은 요(堯) 순(舜)의 일이니, 행하기가 매우 어렵다.” 지하의 신숙주가 이 말을 들었다면 어떤 심정이었을까.
 분명 신숙주는 위징과 어울리지 않는다. 다만, 그는 사육신과는 다른 방식으로 한국역사에 기여한 바 있음 또한 부정할 수 없다. ‘삶은 산처럼 무겁고 죽음은 깃처럼 가볍다’고 했던가. 신숙주의 인생관이 그랬을지 모른다. 그의 후손 중에 단재(丹齋) 신채호(申采浩)가 나왔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도 살아남은 의미는 충분하지 않을까.
 물론, 사육신에 대한 존경의 마음에는 변함이 없다.

장상록 / 예산군농업기술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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