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백숲갤러리(완주군 상관면)에서 만난 최명성 화백의 첫 느낌은 그냥 인상 좋은 털보아저씨였다. 최 화백 또한 “IMF 이전에는 수염을 기르는 사람이 없었으며, 나만큼 오랜 시간 동안 수염을 기른 사람은 없었다”며 원조임을 강조했다. 털보아저씨라는 애칭이 싫지는 않은 모양이다.
하지만 부채와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땐 누구보다 진지했다. 최 화백이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 20년 넘게 부채그림을 그려온 장인의 모습이 엿보였다. 강한 자부심과 애착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최 화백은 “오늘의 나를 있게 해 준 건 합죽선이며, 부채에 붓을 들 때가 지금도 가장 행복하다”며 “앞으로도 부채와 평생을 함께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합죽선에 산수화를 그리는 화가
최 화백은 “당시 부채 그림은 배고픈 직업이었다”며 “하지만 나를 더욱 힘들게 한 건 합죽선에 그림을 그리고 있는 나를 바라보는 왜곡된 시선이었다”고 설명했다.
이때 최 화백에게 손을 내민 게 선자장(합죽선) 무형문화재인 고(故) 이기동 선생이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산수화를 그리기 시작해 지금까지 합죽선 위에 붓을 들고 있다. 실제 최 화백은 지금도 자신을 이기동 선자장의 전속 작가였다고 소개하고 있다.
최 화백은 “이기동 화백과 처음 인연을 맺은 건 지난 89년이었지만, IMF 시기에 이 선생님과 더욱 돈독한 관계를 맺게 됐다. 당시 이 선생님은 나에게 생활비와 용돈, 일감을 주셨다. 나를 먹여 살리셨다고 보면 된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리고 그렇게 시작된 인연은 고인의 아들 이신입 명장과 이어지고 있다.
합죽선의 아름다움과 그림의 조화
하지만 합죽선 그림은 뭔가 특별함이 있다. 합죽선에 그림을 그리면 맛깔나고, 전통산수의 진수를 보여줄 수 있다는 게 최 화백의 설명. 최 화백은 “합죽선에 그리는 그림은 화선지에 그릴 때와는 뭔가 다른 맛이 있다”고 설명했다.
가장 큰 매력은 합죽선과의 절묘한 조화다. 최 화백은 “합죽선 자체가 가진 아름다움과 전통의 수묵이 만날 때 진정한 한국적인 아름다움이 묻어난다”고 말했다.
나는 전업 작가이고 싶다
이런 마음은 많은 사람들이 예술작품을 통해 마음의 치유를 받았으면 하는 소망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이런 최 화백의 생각을 행동으로 옮긴 것이 지난해 2월에 문을 연 편백숲갤러리다. 최 화백은 “붙을 잡고 친구와 술 한 잔 먹을 공간과 작품 몇 개 널 공간이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있었다”며 “단순 전시장이 아닌 작가들의 사랑방 역할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었다”고 밝혔다. 말 그대로 소통의 공간인 셈이다.
그래서 최 화백의 편백숲 갤러리에 대한 애착이 대단하다. 최 화백은 “전통수묵을 사랑하고 미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편안한 공간을 제공하는 것은 물론, 앞으로는 문화적 힐링 공간으로도 만들고 싶다”고 바람을 전했다.
최 화백이 갤러리 맞은편에 편백숲 민속품 경매장을 만든 것도 이 같은 취지의 일환이다. 최 화백은 “유명한 작가 그림이 경매장에서 불과 몇 푼 안 되는 돈에 팔리는 것이 가슴이 아팠다”며 “이런 경매장을 통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많은 동료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었고, 앞으로 보다 많은 분들이 예술의 가치를 알 수 있는 장으로 만들고 싶다”고 밝혔다.
작업실에 틀어박혀서는 좋은 작품을 그릴 수 없다는 최 화백. 최 화백은 “부채 그림은 오늘날 나를 있게 해준 고마운 존재다”라며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합죽선의 아름다움을 알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임충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