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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과 ‘불성실’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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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과 ‘불성실’의 차이
  • 전민일보
  • 승인 2010.07.23 09: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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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적으로 글이란 어떤 의미에서 완전히 객관적인 것이 될 수는 없다. 어떤 대상, 어떤 사안에 대해 글을 쓸 때, 쓰는 이 자신의 주관성이 개입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신문기사의 글은 어디까지나 객관적인 입장에서, 있는 사실 그대로를 독자들이 느끼도록 글을 써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경우에 따라 주관적인 내용이 첨가된 기사가 있다하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사실을 왜곡하지 않아야 한다.
 객관적으로 있는 그대로를 묘사해야 한다고 해서 기사글이 사진이나 동영상과 같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언어에 의한 사실 묘사란 것은, 그것이 아무리 구체적이어야 한다고 하더라도 핵심적인 틀만 묘사하고 긴요하지 않은 세부적인 것은 생략해야 한다.
다음 기사에서 이를 살펴보자.
<10억 빼돌린 행정실장 구속>  학교 회계와 자금 출납을 담당하면서 10억 원이 넘는 학교운영비를 빼돌린 초등학교 행정실장이 법정 구속됐다. 전주지법 제2형사부(백웅철 부장판사)는 21일 학교운영비를 빼돌려 개인용도로 사용한 혐의(특가법상 횡령)로 기소된 안 모씨(36)에 대해 징역 1년6월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는 투명하게 학교운영자금을 관리해야 할 의무가 있는 행정실 직원임에도 내부의 통제가 소홀한 점을 이용해 학교운영자금을 유용한 것은 그 죄질이 좋지 않다.”고 판시했다. 또 재판부는 “다만 피고가 자수해 범행을 모두 인정하고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있는 점, 유용한 금액을 모두 반환한 점 등을 고려해 형을 정했다.”고 덧붙였다. (7월 22일자 전민일보 사회면)
 이 기사는 제목의 10억 빼돌린 행정실장 구속 사실이 재판부 판결내용과 함께 그대로 요약되어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 사건에는 여러 가지 구체적인 내용이 있을 것이다. 우선 10억 원이 넘는 학교운영비를 빼돌렸다면 그 규모를 짐작할 때 빼돌린 기간도 상당했을 것이다. 돈 빼돌린 방법도 궁금하다. 또 피고는 도대체 왜 이 큰돈을 빼돌려 어디에 쓴 것인지, 피고가 자수했다면 왜 언제 자수한 것이며 자수하고 반환했다면 어떻게 해서 반환한 것인지, 이 정도의 횡령이 어떻게 드러난 것인지 등 독자로서 궁금한 내용이 참 많기도 하다. 
허나 기자는, 이런 의문에 대해 어떤 설명도 전하지 않고 있다. 이 기사로 알 수 있는 중요한 내용은 제목 그대로 10억 원 가량을 빼돌린 행정실장이 법정 구속됐다는 것뿐이다.
 기사는 어떤 사실을 객관적으로 묘사하고 그 핵심 내용만을 요약해야 하지만, 독자의 알고자 하는 욕구도 아울러 충족해 주어야 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기사가 갖춰야 할 몇 가지 원칙을 지켜서 ‘어떤 사실’을 전해 주는 것이 맞다. 위의 기사를 기사 작성의 6하 원칙(六何原則)에 맞춰서 풀어가 보자. 신문에 실린 이 기사의 주 내용은 ‘행정실장이 학교운영자금을 빼돌린 사건’이 아니라, ‘법원이 그 행정실장에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한 사건’으로 읽혀지게 된다.  
 다시 생각해 보자. 기사는 6하 원칙(六何原則)에 충실해야 한다. 누가(who), 언제(when), 어디서(where), 무엇을(what), 왜(why), 어떻게(how) 등의 세부적 정보가 제대로 포함되지 않으면 기사 요건을 채우지 못하게 된다. 기자가 어떤 종류의 기사를 취재해 쓰든 이 6가지의 질문을 중심으로 자료를 정리하고 부족한 내용을 보완해야 한다. 이러한 면에서 볼 때 위의 기사는, ‘초등학교 행정실장이 학교운영자금을 빼돌려 유용하고 자수한 사건’으로 초점을 돌려 놓아야 하지 않을까? 그가 과연 얼마 동안에 어떤 방법으로 학교운영자금 10억 원을 빼돌려 어디에 썼으며, 왜 자수하고 어떻게 해서 돈을 반환했는지, 그럼에도 왜 재판을 받게 되었는지 등 말이다. 설사 법원이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한 데에서 비롯된 판결기사라 하더라도 말이다.
 위의 기사에서 보듯이, 사건 기사 대부분은 기자 자신의 주관적 판단이 들어가 있지 않고 누가 쓰더라도 별로 다를 것이 없는 글로 생산된다. 곧 기사의 내용 자체는 일단 객관적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객관적 사실의 묘사임에 틀림없는 이 기사가, 사건의 핵심을 요약하여 독자의 알고자 하는 욕구를 만족시켜 주는 데에는 매우 미흡한 걸 어쩌랴?
 기자는 뉴스 가치 기준에 따라 사실들을 선택하는 주체이면서도 해당 사실에 대해서는 객관적 관찰자로 임하게 된다. 기자는 어떤 사건을 지켜 본 목격자이거나 증인임에도 불구하고 기자로서 그의 역할을 수행할 때에는 그 사건에 대해서 어디까지나 제3의 관찰자, 기록자다. 기자가 이러한 본분을 잊지 않고 그 역할을 수행한다면 이것만으로도 곧 객관주의 저널리즘에 충실한 것이다. 하지만 지켜 본 ‘fact(사실)’ 그것만을 그대로 쓰는 것은 객관주의 저널리즘이 아니라 불성실에 가깝다. 
(독자권익위원, 전북의정연구소 주간 金壽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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