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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대숲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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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대숲에서
  • 전민일보
  • 승인 2009.06.17 09: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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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갈대숲에 이색적인 풍경이 어우러졌다. 초록빛 새순 위에 묵은 갈색 머리가 휘날리고 있다. 대부분의 식물이 지난해 살았던 묵은 것들은 스러지거나 꺾어져 없어지면서 새순이 솟아올라 가는데 갈대만큼은 좀 다르다. 대부분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있는 상태로 밑에서 새순이 올라오고 있다.
  초록과 갈색의 대비도 선명해서 좋거니와 모양새 또한 가지런한 모습이 정갈하다. 갈색 머리는 지난해 풍성했던 갈기 만큼은 아닐지라도 아직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 보기 좋다. 가만히 바라보고 있노라니 마치 성장한 자식이 부모를 업고 있는 모습이다. 부모 자식 간의 다정한 모습 같아 보고 있는 내내 훈훈한 감정이 온 몸을 감싼다.
  넓은 갈대숲은 마치 성인들의 가르침을 일깨워 주는 듯하다. ‘소학’의 내용을 들으면 부모에 대한 예의와 공경이 정말 깍듯하다. 부모님의 몸짓, 손짓. 눈빛 등 어느 것 하나 소홀히 대하지 말라는 가르침은 미처 생각해보지도 못한 것들이다. 그런 옛 어른들의 말씀을 지금 우리들은 그저 먼 얘기나 된 듯 듣고 산다. 

  시어머님은 한 집에서, 친정어머니는 가까운 거리에서 사신다. 그러다 보니 양쪽 어머님들 사이에 오가는 내 감정의 변화가 미묘하다. 시어머님의 경우는 언제나 말조심, 행동조심을 해야 한다. 그러나 친정어머니한테만큼은 그렇게 되지 않는다. 서운할 때는 툴툴거리기도 하고 원망도 하게 된다. 돌아서면 괜스레 공연한 짓을 했다 하면서도 행동은 마음 같지 않다. 그래도 대하는 마음은 왠지 친정어머니가 편한 것은 사실이다.
  나는 아들만 둘이다. 그래서 딸과 친구처럼 지낸다는 살가움을 맛보지 못한다. 시어머님 역시 아들만 셋이고 딸은 없으니 나와 비슷한 처지시다. 그렇기에 딸 없는 시어머님을 대하면서는 먼 미래의 내 모습을 바라보는 마음으로 대하려고 노력한다. 왜냐면 내 스스로 시어머님과 친정어머니 사이에서의 감정이 다르기 때문이다.
  훗날 내가 서 있을 자리에 생각이 깊다. 나에게도 친정어머니처럼 들랑날랑하며 마음을 나눌 딸이 있다면 혼자여도 좋을 듯싶고, 시어머니처럼 아들 며느리와 함께 살아 보고도 싶다. 그렇게 시소처럼 오르락내리락하면서 내 자신을 뒤돌아보게 된다.
  딸 노릇 며느리 노릇을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인지, 어머님들이 뭘 원하며 뭘 필요로 하는지를 정확히 알고 대처했는지. 괜스레 착한 며느리인 척 너스레를 떨거나 좋은 딸인 척 내세우지는 않았는지 하는 생각이 든다. 
  때론 무엇 때문에 이렇게 힘들게 사는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멀쩡한 아들이 있는 친정어머니를 모시는 일이며 시어머님 또한 큰아들, 큰며느리가 있는데 굳이 내가 모시는 일들이 미련스럽게 생각 될 때도 있다.

  한때는 아름다운 머리로 사람들의 눈길을 끌며 살아가더니 이제 쇠락한 모습으로 거친 바람을 맡고 있다. 그래도 단정하고 정갈한 모습이 보기 좋다. 바람 불어 허리가 휘어지려는 것을 밑에서 올라온 무성한 새싹들이 받쳐 지탱해 주기 때문인 것 같다. 물론 처음엔 묵은 것이 새싹의 바람막이기 되어 주었을 것이다. 그러다 점점 새싹이 자라면서 묵은 것의 밑동을 감싸주고 허리를 지탱해 주고 가슴을 안아 준다. 차차 무성하고 듬직한 장정이 되어 묵은 것을 등에 업고 있는 모습으로 변해 간다.
  눈여겨볼수록 아름답다. 그저 지나치고 말 것들이 그리 아름답게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무래도 어머님들을 모시고 있으면서 힘들었던 일들에 대한 보상 심리일 것이다. 저렇듯 보기 좋은 모습으로 잘 견뎌내고 있다고 생각하고 싶은 것이다. 어쩌면 내 삶에 저런 그림이 새겨질 수도 있겠구나 하는 마음인 것이다.
  아니면 이제 내가 자식들에게 기대고 싶어지는 것일까. 훗날 아들 며느리 손자와 함께 어울려 살고 싶은 마음인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함께 모여 사는 가족들이 나오는 드라마를 좋아한다. 특히 어른다운 어른이 있는 집안 분위기를 좋아한다. 누구도 감히 범접하지 못할 위엄과 온화함을 지닌 어른, 그런 어른이 되어 존경을 받아보고 싶은 것이리라.

  철 지난 갈대지만 반듯하고 단정하기에 새싹과의 어울림에서도 보기 좋지 않던가. 꺾이고 바스러져 추해 보인다면 어찌 누구의 눈에 뜨일 수 있을까. 거친 비바람을 막아내며 마지막 순간까지 잘 지켜 나왔기에 지금까지도 보기 좋은 모습으로 남아있으리라. 그렇게 되기까지 갖추고 지탱해야 할 순간들이 얼마나 많았으랴.
  어른다운 어른이 되기에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후손들에게 대접을 받으려거든 웃어른들께 잘 하라 했던가. 그러고 보면 나에겐 자식들에게 본보기가 될 수 있는 길을 만들어 주는 어머님들이 계신다. 그 길을 어떻게 걸어가느냐에 따라 내 삶의 가치가 평가될 것이다. 훗날 내가 제일 웃어른이 될 땐 어떤 모습일까. 초록과 갈색이 어우러진 갈대숲을 바라보노라니 마음 한켠이 숙연해진다. 

행촌수필문학회 주간 / 김재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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