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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유공자 발굴, 국가보훈부의 역할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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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유공자 발굴, 국가보훈부의 역할 아쉽다
  • 전민일보
  • 승인 2024.02.29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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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 항일운동 연구에 평생을 바쳐 오신 향토사학자 윤영근씨(남원항일운동사 저자)는 정부의 독립유공자 발굴이 너무 소극적이라며 정부가 유공자 발굴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윤 원장은 그 대표적 사례로 이일남(호적명:李圭容) 선생 사례를 소개했다.

이일남(李一南) 선생은 4·4 남원북시장 만세운동 당시 일제헌병이 쏜 총탄에 중상을 당하고 평생을 고통속에 사시다가 생을 마감하신 분이다.

나는 어릴 적부터 부친(윤성복·한의사, 1905년생)께 이일남 선생의 만세운동 일화를 자주 들어 알고 있었고, 이성기 선생(4·4만세운동 유공자)으로부터는 이일남은 그냥 집에서 부르는 이름이고 흔히는 규용이라고 부른다는 증언도 들어 알고 있던 터였다.

‘남원항일운동사’를 저술하기 위해 4·3만세운동의 주역 이성기, 이승순 등의 판결문 및 심문조서를 정리하던 과정에 이일남 선생의 증인심문조서가 발굴되어 문서로 그 사실을 확인하였고 북시장 만세운동 주역(정한익, 황찬서, 김홍록 등)들이 모두 독립유공의 훈포장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일남 선생만이 제외되어 있는 것이 안타까웠던 나는 우리 한의원을 다니시는 양규선(梁奎旋)씨에게 이일남씨에 대하여 물어보았다.

“너무 잘 알고 있다. 이일남씨 부친(성명 이유)께서 남원관서당 훈장이셨는데 그분께 한문을 수학했기 때문에 그 집안 내력을 너무 잘 알고 있다. 이일남씨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져 매우 흉했는데 자초지종을 물으니 만세운동 당시 총알이 입안으로 관통해 겨우 살아났으며 동네에서 빈총 맞았다고 놀림감이 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양규선씨를 통해 후손을 알아냈고 그렇게 해서 연락된 분이 이일남씨의 차남 이병관(2018년 작고)씨였다.

불행히도 보훈처는 이일남 선생의 공적을 인정하지 않았다. 심문조서에 적혀 있는 이일남씨와 이규용씨가 동일인임을 확인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후손들의 입증 노력(양규선씨 등 8명의 어른들이 진술한 동일인 확인서와 윤영근 원장의 진술 등)에도 불구하고 보훈처의 입장은 변함이 없었다. 증거를 가져오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확인 절차를 국가가 아닌 후손의 책임으로만 온전히 맡겨놓는 것이 과연 정당한지는 매우 의문스럽다. 당시 자료가 모두 한문과 일어가 섞여 있어 일반인이 이를 해석하고 자료를 찾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2024년 현재 이일남을 이규용과 동일인으로 증언해줄 수 있는 어른은 이제 윤영근 원장이 유일하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몸 바쳐 헌신하신 독립유공자를 발굴하고 이를 선양하는 것은 국가가 해야 할 당연한 본분이다.

보훈처를 보훈부로 승격시킨 이유도 국가가 해야 할 본연의 임무를 책임 있게 처리하라는 국민들의 준엄한 명령임을 명심하고 독립유공자 발굴에 보다 전향적인 자세로 나서기를 기대해본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천희철 전민일보 남원 국장

※본 칼럼은 <전민일보>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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