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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심장에 구멍 뚫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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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심장에 구멍 뚫지 마세요
  • 전민일보
  • 승인 2009.03.25 08: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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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백제와 신라의 병사들이 섬진강을 옆에 끼고 백운산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날씨는 무덥고 양측의 기세는 팽팽했다. 하지만 비도 내리지 않는 전장에서 병사들은 하나 둘 지쳐갔다. 목이 마른 병사들이 샘을 찾아 다녔지만 물은 흔적조차 없었다. 이때 신라의 한 병사가 화살에 꽂힌 나무에서 맑은 물이 흐르는 것을 보았다. 신라군은 얼른 그 물을 마셨다. 갈증이 풀린 것은 물론 힘이 용솟음쳐 신라군은 백제군을 쉽게 제압할 수 있었다. 대체 어떤 나무 길래 속에서 사람에게 힘이 솟는 물을 뿜어내는 것일까.
  신라 말 풍수학의 대가로 알려진 승려 도선은 광양 옥룡사에서 참선(參禪)을 하고 지냈다. 하루는 오랜 수행으로 무릎이 펴지지 않아 나뭇가지를 잡고 일어서다 그만 가지를 부러뜨리고 말았다. 가지가 부러진 줄기에서 솟아나온 수액을 마신 도선은 신기하게도 무릎이 쉽게 펴지는 경험을 했다. 뼈에 이로운 수액을 뿜는 나무는 무엇일까.
  이 나무의 이름은 다름 아닌 고로쇠다. 고로쇠나무에 대한 승려 도선의 전설속 이야기에서 ‘뼈에 이로운 물’을 뜻하는 ‘골리수’(骨利水)란 이름이 생겼고, 지금은 그 말이 변해서 ‘고로쇠’나무로 불리고 있다. 실제 고로쇠나무의 수액에는 각종 미네랄과 마그네슘, 칼슘, 비타민 등이 풍부하게 들어있어 소화와 관절계통 질환에 효험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4대 미네랄로 불리는 칼슘(Ca)과 칼륨(K), 마그네슘(Mg), 나트륨(Na)이 수액 가운데 무기성분의 94%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요즘 고로쇠 물이 몸에 좋다하여 너도나도 즙을 뽑아 마신다. 위장병, 신경통, 관절염에 두루두루 좋으니 ‘골리수(骨利樹)’란 한자어의 유래도 그렇다. 그러나 맨살에 드릴이 꽂혀 울컥울컥, 수액을 토해내는 고로쇠를 생각하니, 과연 피눈물을 흘리는 말 못하는 나무의 심정은 어떨까. 어찌 내 몸이 아프고 상처받는 게 사람이나 짐승뿐이랴.
  그럼 전설 속 이야기처럼 고로쇠나무에 구멍을 뚫으면 수액이 콸콸 솟을까? 지리산이나 백운산 등지의 남쪽지방에 많은 고로쇠나무는 절기상 우수(2월 18일)에서 곡우(4월 20일) 때까지 수액을 채취한다. 가장 많은 수액이 나오는 시기는 겨울잠을 자던 개구리가 놀라서 뛰어나온다는 경칩(3월 5일) 무렵이다. 이 기간에는 고로쇠나무 줄기에 손가락으로 한 두 마디 정도 구멍을 뚫으면 누구나 달콤하고 시원한 수액을 맛볼 수 있다.
  그런데 고로쇠 수액 판매가 상당한 소득원이 되면서 곳곳에서 산림청의 허가 없이 무분별하게 나무에 구멍을 뚫어 채취에 나서는 바람에 나무가 고사하는 등 각종 문제를 낳고 있다.
  지난 한 해 동안 채취된 고로쇠 수액은 무려 2500톤에 이른다고 한다. 한 나무에서 고작 7~8ℓ정도의 수액을 얻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실로 무수히 많은 고로쇠나무가 수난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고로쇠나무 심장에 구멍을 뚫어 돈을 벌려는 사람들 때문에 고로쇠나무가 흘리는 피눈물을 생각해보라. 고로쇠나무는 우리의 사랑을 받고 있지만 정작 자신의 몸은 상처투성이며 골병이 날 정도다. 거기다 일부 지방자치단체들은 고로쇠 축제까지 열고 있다. 무분별한 고로쇠채취를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지리산을 비롯한 일부 지역에서 고로쇠 수액 채취가 당국의 지침을 어긴 채 비위생적이며 과도하고도 무분별하게 이루어지고 있지는 않는지 살펴볼 일이다.
  난 죄가 없소/왜, 죄 없는 내 심장, 팔, 다리/구멍 뚫어/ 그것도 모자라 목에 칼 부려/효시해 놓으시나이까/내 피를 마시고/내 눈물을 마시고/천년의 삶 누리시려는지/만년의 삶 누리시려는지/백년을 채 살지 못하며 가는 세월/당신보다 나이 먹은 어른도 몰라보고/말 못하는 나무라고/죄 없는 내 형제자매/목을 찔러 아픔을 주고/내 몸, 마음 이리 처참히 찢으셨나이까/도대체 당신에게 무슨 잘못 있었나요/내 몸의 피와 눈물을 빼려거든 하늘을 보세요/어찌 창세의 하늘이 두렵지 않나요/몸이 아파 이제 영산을 지킬 기력이 없네요/두 손 들어 비오니/내 심장에 더 이상 구멍 뚫지 마세요.
 고로쇠나무가 흘리는 피눈물을 생각하며 이를 시로 옮겨봤다.    

신영규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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