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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중요한, 母自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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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중요한, 母自欺
  • 전민일보
  • 승인 2022.02.17 09: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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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쏙이지 말그래이!(不欺自心)”

불전에 삼천 배를 시킨 후 좌우명을 묻는 한 청년에게 들려준 성철(1912~1993)스님의 한 마디다.

녹초가 된 그에게 고작 속이지 말라는 가르침은 크게 울림을 주지 않았던 모양이다. 잠시 머뭇거리자 바로 이어진 또 한 마디, “와? 좌우명이 무겁나? 무겁거든 내려놓고 가그라!”였다. 이에 뭔가 깨달음을 얻은 청년은 바로 출가하였고, 그는 20여 년간 성철스님을 시봉했다.

친구 찾아 절에 왔다가 평생을 절에 머물게 된 원택(1944~)스님에 관한 얘기다.

그렇다. 뭔가 대단한 일갈을 기대했지만, 그 예상과는 전혀 다르게 너무도 평범한 가르침을 주었고 마침내 그것이 원택에게는 평생의 좌우명이 되었다. “쏙이지 말그래이!”너무 쉽고도 단순한 말이다.

그렇지만 잘 지켜지지 않으면서도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무섭고 무거운 가르침이다. 사실 거짓말의 역사는 인류의 시작과 함께했다. “하나님처럼 될 것이다”는 사탄의 유혹에 속아 선악과를 따먹는 행위는 사탄과 공범 되어 하나님을 속인 것이다. 게다가 그의 아들 카인은 하나님이 동생 아벨의 제사만 흠향한다며 시기한 나머지 돌로 쳐 죽인다. 동생이 어디에 있냐는 하나님에게 “모릅니다”로 부인하며 속인다. 결국 추궁 끝에 실토는 하지만 에덴의 동쪽 밖 ‘놋’으로 쫓겨난다.

이로써 인류 최초의 (형제) 살인자, 인류 최초의 가정파탄자, 인류 최초의 거짓말쟁이라는 불명예를 안고 말았다.

게다가 오늘날까지 ‘카인 콤플렉스(Cain complex)’라는 원죄를 떠안고 살아야 하는 고달픈 우리들이다.

이러한 태생적 유산 때문에 선서한 후 거짓말하면 ‘위증죄’, 허위 사실을 신고하면 ‘무고죄', 범인을 도피시키며 자신이 범인이라고 속이면‘ 범인도피죄’와 ‘증거인멸죄’, 속이며 이득이나 재물을 취득하면 ‘사기죄’ 등이 우리를 옥죈다.

거짓말이 만들어낸 현란한 죄명들이다. 거짓말에 익숙한 나머지 그것도 모자라 아예 ‘만우절’까지 정했으니 거짓말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구별이 모호해졌다.

또 ‘선의의 거짓말’이라고 하여 아예 권장한 듯한 추세는 더욱 판단력을 흐리게 한다.

“속이지 말고 거침없이 진실을 말하라.”, “사람의 삶은 정직하게 살아야 하니 그렇지 않고도 살아남는 것은 요행히 화를 면했기 때문이다.”, “하루라도 선을 생각하지 않으면 모든 악이 저절로 일어난다.”, “이른바 뜻을 진실하게 한다는 것은 자신을 속이지 않는 것이니 ~(중략)~그를 위해서 군자는 반드시 홀로 있을 때도 신중해야 한다.”

앞 2개는 논어의 가르침이다. 자로가 군주 섬기는 도리를 묻자 속이지 말고 사실대로 간하라고 교육한다. 있는 사실을 누락함도 속이는 것이 된다는 요지이고, 그 다음 경문은 본성대로 정직하게 살지 않고도 용케 지금까지 살아남았던 것은 운좋게도 죽음을 면한 것에 불과하다는 가르침이다. 때문에 날마다 선(善)을 생각하며 살지 않으면 저절로 생긴 악으로 가득할 것이라는 경구다.

그래서 ‘대학’ 역시 자신을 속이지 않는 무자기와 선악이 나뉘는 미세한 낌새일지라도 잘 살피라는 신독이 성의(誠意)의 주요 내용이 됨을 깨우친다. 모두 수신 공부에 앞선 무자기의 중요성을 강조한 가르침들이다. 그 결과 이에 매혹된 선현들도 많았다. 퇴계는 간사한 생각을 말라는 사무사(思無邪)와 늘 공경함을 잊지 말라는 무불경(母不敬), 그리고 신기독과 무자기를 평생의 좌우명으로 삼았고, 조선 중기의 문신 임권은 “홀로 있어도 자신을 속이지 말라.”를, 김장생 역시 “무자기의 세 글자가 바로 평생 힘써야 할 바이다.”라며 마음을 다잡는 글귀로 삼았다.

물론 “거짓 증거 하지 마라(기독교의 십계명)”, “자신을 속이지 마라(갈라디아서 6:7)”, “거짓말을 하지 말라(不安語, 불교의 五戒)”는 종교적 계율 역시 무자기의 다름 아니다.

거짓말은 또 다른 거짓말을 낳고 그것이 확대 재생산되어 인성을 망가뜨려서 마침내 범죄로 가득 찬 세상을 만든다. 이 때문에 속임수를 죄악시했던 것이다.

물론 전쟁과 같은 불가피한 경우는 예외가 된다. 생사존망의 중대기로에서 승리를 위해서는 속임수가 그 속성이 되기 때문이다. 사실 남을 속이지 않음은 물론이고 자신도 속이지 않고 순백의 선한 본성 그대로 바르게 산다면 언제 어디서나 뿌듯한 자족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일러 ‘양심의 희열’ 또는 ‘자겸(自謙)’이라고도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함이 인간의 숙명인가?

우리가 하루에 200여 회 이상의 거짓말에 노출된다는 연구도 있다.

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5분에 한 번은 서로 속고 속인다는 얘기다. 심지어 대화의 1/2~1/3은 거짓이다는 주장도 있다. 그야말로 거짓말의 일상화다.

거짓말 대회도, 거짓말을 소재로 한 노래와 영화 그리고 소설도 있다. 최근엔 문명이 발달함에 따라 정교한 모사품이나 짝퉁에 대역인물까지 드러내고 활개친다. 그래서 이를 밝히는 거짓말 탐지기도 등장했고 이를 구별하는 책자와 교육원도 생겼다. 그렇지만 거짓말을 하면 코가 커지는 피노키오도 없는 거짓말 천국에서 진위를 밝히며 바르게 살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오직 하나님 말씀만을 얘기하며 선도해야 할 종교가 천국행 티켓 ‘면죄부’를 팔았던 역사도 있었으니 어디의 누굴 믿어야 할지 판단이 어렵다. 그리고 또 모두가 두려운 세상이다.

속임수의 다양화·복잡화·일상화·구별 불능화의 시대가 되었음이다.

“나는 평생 수많은 남녀 무리를 속이고 거짓말한 죄로 아비지옥에 빠질끼다. 내 말에 속지 말그래이, 나는 거짓말 하는 사람이여!”

선현들의 박제화 된 가르침들에도 불구하고 차라리 성철 스님의 진솔한 고백이 더욱 살갑다. 그렇다고 해도 “쏙이지는 말그래이!”

양태규 옛글 21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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