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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정전 협정 기념일을 맞이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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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정전 협정 기념일을 맞이하며…
  • 전민일보
  • 승인 2017.07.20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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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월 25일, 북한의 남침으로 한반도를 잿더미로 만들었던 동족상잔의 비극 6·25전쟁이 시작되었다.

갑작스러운 전쟁에 미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우리군은 낙동강 전선까지 밀리기를 계속하였다.

그러나 이내 유엔군의 참전과 국군의 치열한 전투로 전세를 역전시킨다. 중공군의 개입으로 승기를 잡았던 우리군은 다시 밀리기 시작하였고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몇 년간의 지루한 싸움이 계속되었다.

끝날 것 같지 않은 전쟁에 부담을 느낀 국제 연합군과 공산군은 비밀리에 접촉을 시도하고 1951년 7월 10일 개성에서 첫 정전회담을 열었다.

모든 국민이 손꼽아 기다리던 정전회담이 1952년 7월 개성에서 개최되었다.

같은 해 10월 판문점으로 장소를 옮겨 회담을 진행하였으나 전쟁 포로 문제 등 양측의 의견 차이를 극복하지 못했고, 결국 회담이 중지 되고 말았다.

1953년 7월 27일 판문점에서 국제연합군 총사령관 클라크와 북한군 최고사령관 김일성, 중공인민지원군 사령관 평더화이가 최종적으로 서명함으로써 협정이 체결되었다.

이로써 계속될 것만 같았던 길고긴 전쟁도 휴전 국면으로 접어들게 된다.

6·25전쟁에는 150만 명의 국군과 194만 명의 유엔군이 참가하여 목숨을 희생하였다.

미국 등 16개국에서는 군인을 파병하여 직접 전투에 참여하였으며, 스웨덴 등 5개국에서는 의료를 지원하였고, 그 외 42개국은 전쟁 중 물자를 지원하였다.

전쟁 끝난 후 한국군은 62만 명, 유엔군은 15만 명, 민간인 240만 명이 죽고, 부상당하고 실종 되었다.

전쟁 피해자의 숫자만 보아도 그 당시 6·25전쟁이 얼마나 참혹했는지 알 수 있다.

현재 유엔군 전사자 2,300명의 시신은 부산에 있는 유엔기념공원에 안치되어 있다.

1950년 6월 25일 전쟁의 시작일과는 다르게 1953년 7월 27일에 정전협정이 체결되었다는 사실은 아직 많은 국민들에게 생소하다.

정전 60주년이었던 2013년, 대한민국국회는 7월 27일을 유엔군 참전의 날로 제정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그 이후로 매년 7월 27일이 정전협정 기념일로 지정되었다.

우리나라는 2013년 정전 60주년을 계기로 6·25전쟁에 참전하였던 21개국 정부대표단을 초청하여 감사를 표하는 첫 국제 행사 거행한 이후 매년 정부행사를 개최하여 참전국과 참전용사들의 희생에 감사를 표하고 있다.

이번 해에도 역시 “함께 지켜온 대한민국, 함께 나아갈 통일 한국”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다양한 국내·외 행사를 개최할 예정이다.

오늘날의 평화로운 대한민국이 존재하기까지 세계 많은 나라의 도움과 숭고한 희생이 있었다.

앞으로도 참전국들과 참전용사에 대한 감사행사와 교류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져 현재 대한민국이 누리고 있는 평화를 위해 싸워준 이웃들의 숭고한 희생을 기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또한 낯선 나라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쳐 싸워준 유엔 참전용사들과 이를 지원해 준 나라들과 같이 앞으로는 우리가 과거 우리와 같은 아픔을 겪고 있는 지구촌 이웃에게 우리가 받았던 도움을 다시 되돌려 줄 수 있는 나라가 되기 위해 힘써야 할 것이다.

남은실 전북동부보훈지청 보훈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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