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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少琴)에서 화합의 소리를 듣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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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少琴)에서 화합의 소리를 듣다
  • 전민일보
  • 승인 2016.11.04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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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에게서 소금(少琴)하나를 선물 받았다.

이 소금은 대나무의 뿌리를 잘라내고 밑동에서부터 40센티미터 정도의 길이로 자른 후 다듬어서 지인이 손수 만든 악기이다.

취구(吹口)와 여섯 개의 지공(指孔)을 정교하게 뚫고 다듬었을 지인의 손길을 느끼며 취구에 입술을 대고 소리를 내보았다.

비록 연주 수준은 아니지만 대나무의 빈 공명통에서 울려나오는 맑은 바람소리 같은 것을 들으며 청명한 기운을 마음에 가득 담아보았다.

사심이 없고 속이 비어 있기에 맑은 소리를 낼 수 있는 대나무의 성정을 생각하면서 문득 대나무로 유명한 담양의 소쇄원 원림을 떠올려보았다.

소쇄 (瀟灑), 맑고 깨끗하다라는 뜻이 담겨있는 소쇄원은 죽림으로 둘러싸여 있는 자연 정원이다.

소쇄 양산보는 15세에 정암 조광조의 문하에서 수학하게 되는데, 스승이 바른 정치를 구현하다가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사약을 받고 죽게 되자 17세에 고향으로 돌아와 평생 세상에 나가지 않고 은둔하면서 처사의 길을 걸었던 인물이다.

선비로서 자신의 큰 뜻을 세상에 펼치지 못하였으나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지 않고 학문에 힘쓰며 지역의 선비와 교류하고 나무와 화초를 가꾸고 소쇄원 원림을 조성하며 자연과 동화되어 바른 삶을 살아간 선비의 본보기가 되었다.

소쇄원의 주인인 양산보와 교류했던 선비들은 면앙정 송순, 석천 임억령, 하서 김인후, 고봉 기대승, 제봉 고경명, 서하당 김성원, 송강 정철 등 당대의 기라성 같은 선비들이었다.

소금을 손에 들고 다시 소리를 내본다. 소쇄원 원림에서 들었던 한 줄기 바람소리가 들려온다. 댓잎이 바람에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 온다.

옛 선비들의 세모시 도포자락의 곧은 올 틈새로 흘러나오는 면앙정가, 사미인곡이 들려온다.

대나무 숲 넘어 계곡물 소리에 어우러진 옛 선비들의 음성이 청아하다.

우국충정을 논하는 대쪽 같은 소리가 귓가에 쟁쟁하게 들려온다. 대나무처럼 곧고 푸른 절개를 지닌 소리가 들려온다.

어느 해 늦가을, 담양소쇄원 대나무숲에 들러 대나무들의 노래 소리를 들었다. 대나무같은 곧은 절개를 지녔던 선비들이 난세를 피하여 소쇄원의 광풍각, 제월당에서 논하던 우국충정의 노래였다.

바람소리만이 댓잎을 흔들며 광풍각에 메아리치고 있었지만 그 바람소리 속에 선비들의 청아한 음성이 아직도 들려오는 듯 했다.

소금을 다시 만지작거리며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삼국유사에 나오는 만파식적(萬波息笛)을 생각해본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신라 제31대 신문왕은 부친인 선왕 문무왕을 위하여 동해안에 감은사를 지어 추모하였는데, 죽어서 해룡이 된 문무왕과 천신이 된 김유신이 합심하여 용을 시켜 동해의 한 섬에 대나무를 보냈다.

이 대나무는 낮이면 갈라져 둘이 되고, 밤이면 합하여 하나가 되는지라 왕은 이 기이한 소식을 듣고 현장에 거동하였다. 이 때 나타난 용에게 왕이 대나무의 이치를 물으니,

“비유하건대 한 손으로는 어느 소리도 낼 수 없지만 두 손이 마주치면 능히 소리가 나는지라, 이 대나무도 역시 합한 후에야 소리가 나는 것이요…”

왕이 대나무를 베어서 피리를 만들어 부니, 나라의 모든 걱정 근심이 해결되었다 한다. 그리하여 이 피리를 국보로 삼았는데, 이 설화에는 신라가 삼국통일 이후, 흩어져있던 백제와 고구려 유민의 민심을 통합해 나라의 안정을 꾀하려했던 호국사상이 담겨져 있다.

소쇄원의 죽림에서 들은 선비들의 우국충정과 통일신라시대 만파식적에 담긴 화합의 화음을 연주하기 위해선 아무래도 소금(少琴)을 곁에 두고 자주 연습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소현숙 전북도 여약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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