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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어도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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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어도 그만
  • 전민일보
  • 승인 2016.10.12 09: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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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관에 가는 길에 아내를 차에 태웠다. 아내의 만돌린 수업이 있고, 나도 자원봉사자 교육이 있어 함께 나갔다. 내비게이션을 켜고 목적지 인근 아파트 이름을 찍었다.

한 달 전에 아내의 배려로 장착한 내비게이션이다. 쓸 만한 내비게이션을 달고 부부 함께 여행을 가지고 약속했다.

그러나 어디 세상살이가 그리 만만한가. 이런저런 일로 부부여행은 자꾸 미루어졌다.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을 때 아내가 한 마디 툭 던진다.

“그놈의 내비게이션 있으면 뭐해?” 하며 고개를 차창 밖으로 돌린다.

옳은 말이다. 긴요하게 써먹은 적이 없었으니까. 없을 때는 꼭 필요한 것이라 생각했는데, 정작 사 달고 보니 별로 소용이 없었다.

‘그러네 그려. 언제 한번 써먹어야지’ 이랬으면 좋을 것을,

“까짓것, 떼어 버려야겠네. 꼭 빈정대는 말투 하고는.”하고 언성을 높이고 말았디.

그러고 보면 없을 때는 꼭 필요할 것 같지만, 막상 들여놓고 보면 별로 써먹지 않은 것이 얼마나 많은지….

주방에서 밀려나 골방에 방치된 전자레인지를 본다. 처음 들여놓을 때만 해도 이것저것 데워먹고 찜질팩까지 데워 쓰자고 사왔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게 처리할까 고심 중이다. 그냥 버리기는 아까우니 말이다.

아내가 장롱 위에 넣어둔 기타를 꺼내어 줄을 고르더니 동요 한 곡을 연주한다. 그러고선 마음에 들지 않는지기타 줄을 당겨 감으면서 미, 솔, 도 음을 낸다. 이내 기타를 내려놓으면서

“내일 김 선생에게 주어야겠어.”하고 결심한 듯 내뱉는다. 아쉬움이 묻어난다. 그 이야기를 처음 꺼낸 것이 벌써 한 달쯤 지났다. 김 선생은 만돌린 연주 봉사 때 가끔 기타 반주를 해주는 사람이다. 기타가 고물이라며 불평하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잘 생각했어. 물건은 꼭 필요한 사람이 가져야 할 것 같애.” 나는 아내의 결정을 적극 지지했다.

현관 신발장 옆에 십여 개가 넘는 우산이 접혀져있다. 버리기엔 조금 아깝다. 몇 년이 지나도록 한 번도 펼쳐보지 않은 것이 있어 어찌할까 망설인다. 행사장에서 답례품으로 우산을 주면 얼마나 좋아했던가.

어느 제자가 우산 50여 개를 보내주어 직장 동료들에게 나누어준 추억이 있다.

이젠 그 우산들이 없어도 그만인 세월이 되었다.

퇴직하고서 남들이 다 한다는 골프에 관심을 기울이자, 사위가 몇 번 썼다며 골프채를 보내왔다. 3년여 동안 골프를 배운다고 폼을 잡았지만, 나하고는 여러 면에서 어울리지 않았다.

지금은 방구석에 뎅그러니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다.

그러고 보니 나도 늙었다. 물건에 대한 애착이 점차 사라지는 것 같다. 아직 집착이 강한 아내를 보며 나보다 오래 살 것 같아 마음이 놓인다.

내가 아들, 딸에게 없어도, 있어도 그만인 아버지로 남는다면 어쩌지. 죽는 날까지 꼭 있어야만 하는 남편, 아버지로 남고 싶은 것은 누구나의 소망이 아닐까?

김현준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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