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일이 없으면 밤마다 산책을 한다.
글을 쓰는 조그만 공간에서 출발하여 아중천변을 한 바퀴 돌다오면 한시간 이상 걸린다.
땀을 적당하게 흘리고 나서 몸을 씻으면 세상에 부러울 게 별로 없다. 산책을 하는 목적이 운동도 운동이려니와 내 스스로를 가장 절실하게 만날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산책을 하다 가끔 지인을 만나기도 하지만 이런저런 것 따위에 신경 쓰지않고 나 홀로 시간을 가질 수 있어 마음이 평안해지기까지 한다. 이 때 마주친 사물이나 떠오른 생각을 가다듬어 글을 쓰는 일이 많다.
오늘도 역시 걷기 편한 복장을 하고 길을 나섰다.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꽤 많은 사람이 천변에 나와 운동을 했다. 천변에는 노인요양원이 두 군데 있다.
한 곳은 생긴 지 오래되었고 다른 한 곳은 얼마 전에 비슷한 이름을 붙이고 문을 열었다. 먼저 문을 연 요양원 출입구 앞에 “사랑합니다.”는 말을 바위에 새겨놓았다. 평소에는 그 말을 보고 그냥 지나쳤는데, 오늘은 그 말이 내 발길을 붙잡았다.
입원한 환자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잘 돌보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말일 것이다.
몸이 아픈 어르신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보살펴주는 요양원이라면 누구든 신뢰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장애인복지시설에서 장애인을 짐승 때리듯이 때린 사회복지사가 있어 충격을 주었다.
그리고 노인요양시설에서도 관리자들이 수용한 어르신을 대상으로 폭언이나 폭행을 일삼아 문제가 되었다. 중증복합장애를 가진 아들을 받아 준 곳이 없어 집에서 집사람이 20년째 돌보고 있다.
장애인활동보조사가 하루에 세 시간씩 왔다가지만, 근본적으로 시수가 절대 부족하다. 복합장애를 가진 자녀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어 한 사람이 24시간 그림자처럼 붙어 다녀야 하기 때문이다.
중증복합장애를 가진 아들 때문에 집사람은 집안일을 거의 할 수 없다. 팔순이 넘은 어머니께서 찬을 만드시고 아침을 준비하신다.
시장을 보는 일을 비롯해 웬만한 가사는 내 몫이다. 그래서 집사람이 외부활동이나 경제활동을 하는 것 따위는 꿈에도 생각할 수 없다. 그런데 현행법으로는 부모가 장애를 가진 자녀의 활동보조서비스를 할 수 없다.
장애1급을 가진 가족에 대해서는 가족이 활동보조서비스를 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해야 한다.
스무 살이 되었지만 눈멀고 귀먹고 말 한 마디 하지 못하는데다, 지능이 이제 갓 돌 지난 수준인 아들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우리 가족이다. 집사람은 이런 아들을 효율적으로 돌보려고 오래 전 장애인활동보조사 교육을 수료하였다.
요양보호사는 직계가족을 돌볼 수 있지만, 장애인활동보조사는 돌볼 수 없다. 이상해도 너무 이상한 법이다. 법이 이렇다보니 항간에서는 장애인가족끼리 서로 활동보조를 하고 있는 것처럼 꾸며 불법적으로 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법을 제대로 만들지 않으면 편법과 불법이 난무하기 마련이다. 부족한 사회복지관련 인력으로 이러한 불법과 편법을 예방할 수 없다.
법은 만든 사람이 편리하고자 하면 안 된다. 지켜야 할 사람이 공감하고 신뢰해야 법이 법답고 사회질서를 유지할 수 있다.
노인요양원 바위에 새긴“사랑합니다.”는 말이 우리나라 사회복지시설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한낱 구호에 머물면 안 된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그릇된 법을 손질하여 복지서비스 질을 높여야 한다.
최재선 한일장신대 인문학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