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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만나는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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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만나는 어머니
  • 전민일보
  • 승인 2015.10.15 10: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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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앞자리에 앉은 아주머니의 뒷머리가 어머니와 닮았다. 동네 미장원에서 파마한 머리숱이 눈에 익었다. 얼핏 보이는 옆얼굴도 햇볕에 그을려 어머니와 닮았다.

아마 50대 후반이었을 때 모습 같다. 재래시장에서 콩을 볶았는지 고소한 냄새가 솔솔 풍겼다. 손자 손녀에게 나누어 줄 군것질거리지 싶다.

어머니는 장날이면 시장에 나가 옥수수 뻥튀기를 파란 비닐에 가득 담아오셨다. 며칠 동안 우리 형제들은 뻥튀기를 물리도록 먹곤 했다.

모래내 재래시장 좌판 앞에 앉은 할머니가 어머니를 닮았다. 머리에 수건을 두른 것도 그렇고, 무명 치마저고리도 본 적이 있다.

어머니는 장날이면 식구들에게 비린 냄새라도 맛보게 하려고 시장에 가셨다. 중간 정도의 갈치를 꼭 두 마리 지푸라기에 묶어 사오셨다. 토막을 내고 갓캐온 햇감자를 넣어 찌개를 끓이셨다. 지금 어디서 그 맛을 볼 수 있을까?

도시 개발지역 공터에 일군밭에서 할머니가 호미질하고 있다. 초여름 햇볕이 따가운 한낮이다.

콩밭을 매다가 머리에 두른 수건을 벗어 이마의 땀을 닦는다. 작년에는 들깨를 심어 들기름 몇 병을 짰다고 했다.

목사님과 딸네 집에 한 병씩 돌렸는데, 올해는 힘이 부쳐 그 중 수월하다는 콩을 심었다고 했다. 수건을 두르고 콩밭을 매는 그 할머니의 모습에서 어머니를 본다. 어머니는 땀을 많이 흘리셨다. 음식이 부실하고 7남매를 낳아 기르시느라 몸이 쇠하였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보고 싶을 땐 이모님을 찾으면 될 것을, 젊으신 이모가 어머니보다 먼저 세상을 하직하여 그렇게도 못한다. 초등학교 2학년 때인가 이모님이 시집을 갔다.

연지 곤지 찍고 곱게 단장한 이모님은 천사처럼 예뻤다. 몇년 뒤 운암댐 공사로 논밭이 수몰되면서 보상금을 받아 계화도 간척지에 이사했다.

소금에 찌든 간척지를 민물로 적셔 농경지를 만드는 고된 세월이었다. 버텨보려고 발버둥을 쳤지만, 이모부님은 타고난 농사꾼이 아니었다. 우여곡절 끝에 호구지책을 찾아 평택 천 옆에 자리를 잡았다.

유료 낚시터를 만들고 서울의 낚시꾼들을 끌어들였다. 사업이 자리를 잡는 듯 싶었으나 자본회전이 더디고 무한경쟁에 시달렸다. 이모님은 위암 선고를 받고 6개월 만에 생을 마감하였다. 어머니는 몹시도 슬퍼하셨다.

아파트의 경로당 여자 회원들은 노래 공부를 마친 뒤, 끼리끼리 모여 화투장을 돌렸다. 십 원짜리 고스톱을 친다고 했다. 소일거리가 되고 치매 예방에 그만이라고 좋아하는데, 노시는 모습이 어머니와 너무 닮았다. 예전에 막냇동생이 사는 아파트에서 손자 손녀를 돌보시던 어머니가 틈이 나면 경로당에 가셨다. 무얼 하면서 소일하시느냐고 여쭈웠더니 동전내기 민화투를 친다고 하였다.

그러고 보면 세상 곳곳에 어머니가 있다. 처처불상(處處佛像)이라더니, 내겐 처처 모친이다.

어머니는 돌아가신 게 아니라, 여러 모습으로 환생하셨다. 할렐루야!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어머니를 일깨워준 아주머니, 할머니께 감사드린다. 마땅히 그분들을 공경해야 하리라

김현준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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