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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 쇠귀에 경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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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 쇠귀에 경읽기
  • 전민일보
  • 승인 2015.01.15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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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길섶 문화비평가

 
누군가 말귀를 전혀 알아듣지 못할 때 우리는 우이독경, 쇠귀에 경읽기라고 한다. 유사한 뜻의 고사성어로는 마이동풍이 있다. 마이동풍은 당나라 때의 시인 이백의 시에서 유래한다. 왕십이가 이백에게 시를 써 보내기를 “한야에 홀로 술잔을 들며 수심에 잠긴다”고 하니 이백이 답한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가 지은 시부(詩賦)를 들어도 고개를 가로저으며 들으려 하지 않음이 마치 봄바람이 말의 귀에 부는 것과 같다”.

새해 벽두부터 세상 사람들의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는 ‘나랏님’때문에 탄식과 어처구니를 넘어 무감각해지는 것 같다. “국민 여러분 모두 꿈과 희망이 결실을 보는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합니다”고 한 신년사 인사말, 정말 꿈과 희망을 주려나보다 했더니만 역시나 내 귀가 민망해질 정도다. 참담하다. 심지어는 나랏님의 든든한 아군인 조중동류의 언론들마저 거세게 질타할 정도니, 이 정도면 차라리 높은 분의 ‘독야청청’이오 그 독야청청을 몰라주는 어리석은 백성들의 우매함이라고 자책하는 게 속 편할까.

나랏님은 신뢰의 정치인이라고 평가되곤 했었으나 높은 자리에 앉은 이후에는 그런 평가는 바람처럼 사라졌다. 도대체 지켜지는 공약이 없다시피 하니 그럴만 하다. 심지어 나랏님은 허위사실유포로 고발당하기조차 했다. 지난 대선 때 공약집 자료와 선거운동본부 핵심인사들의 발언을 종합해보면, 모든 노인에게 20만원씩 줄 계획이 아니었음에도, 유세과정과 최종공약집에서 ‘모든 노인에게 20만원을 지급하겠다’고 약속했으니, 자료집의 내용과 다르게 유세를 했으므로 허위사실 유포라는 것이다. 감히 고발을 한 오건호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의 주장이다. 물론!, 보기좋게 기각당했다.

나랏님은 당선인 시절 ‘사회적 자본’이라는 말을 쓰기도 했다. “선진국으로 진입하기 위해 한국이 넘어야 할 마지막 관문이 바로 사회적 자본을 만드는 것”이라 했다. 사회적 자본을 ‘신뢰사회’라고 이해했다. 맞다. 신뢰는 사회적 자본의 핵심적 동력이자 사회를 건강하게 활성화하는 인프라다. 그러나 작금의 사태는 어떤가. ‘나랏님 말씀’이 백성들의 말과 달라도 너무 다르다. 신뢰라는 말을 꺼내기조차 머쑥하다. 민심이 흉흉하다.

왜 그럴까, 생각해본다. 왜 민심과 가까이 놀려고 하지 않는가. 세월호 유가족들도 몇 번을 만났으니 소통 문제는 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학교 선생님들의 경우, 날마다 학생들에게 말하고 있으니 학생들과의 소통이 넘쳐난다고 해야 할까. 공감하든 반감하든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보는 마음의 문을 열고 있느냐가 소통의 출발일테다. 그러니 말을 상대에게 했다, 또는 서로 주고받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소통이 충분히 이루어졌다고 볼 수는 없다. 소통이란 뭔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차이를 전제로 일어나는 행위이고 그 차이를 해결해나가는 과정이다. 그래서 소통은 형식논리가 중요한 게 아니라 마음의 지향성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소통에 대한 오독 때문에? 그러지는 않아 보인다.

건곤일척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루비콘을 건넜다고 봐야 할까. 모든 것을 걸고 사생결단하는 모습으로 비춰진다. 백성만을 바라보고 가야 할 나랏님은 민심은 철저히 무시하고 자신을 모시는 소위 ‘문고리’권력에 대해서만 무한신뢰를 보내는 형국이다.

대우탄금(對牛彈琴). 마이동풍과 같은 뜻이다. 그러나 그 고사를 보면 묘한 차이가 있다. 소에게 거문고 소리를 들려주니 듣는 척도 안하고 풀을 계속 뜯을 뿐이더니만, 송아지 울음소리를 흉내내 들려주니 꼬리를 흔들며 그 소리에 귀를 쫑긋 하더란다. 익숙한 소리에만 움직인다는 것, 다시 말해 소통의 절벽이고, 자칫 독야청청이 아니라 독야흉흉(獨也凶凶)의 처지가 되지나 않을지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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