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도립미술관 10주년 특별전 ‘열정의 시대 : 피카소부터 천경자까지’가 내년 2월 22일까지 도립미술관에서 열린다. 열정과 집념의 시대를 살다간 서양과 한국의 모더니즘 걸작을 감상할 수 있는 이번 전시에는 100여점의 작품이 전시된다. 이 중 주목할 만한 작품을 엄선해 8회에 걸쳐 소개한다./편집자주
이중섭(1916~1956)은 평안남도 평원에서 대지주 집안의 삼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오산고등보통학교에서 스승인 임용련을 만나 새로운 서구예술에 눈을 뜨는 한편 남다른 민족의식을 갖게 됐다.
1935년 일본 제국미술학부에 유학했다가 좀 더 자유롭고 전위적인 분위기의 문화학원으로 옮겨서 졸업했다.
문화학원에서 이중섭은 강렬한 야수파의 조형성을 습득했고 임용련의 가르침에 영향을 받은 드로잉을 근본으로 자유롭고 강렬한 선묘력을 구사하면서 자신만의 독창적인 화풍을 구축했다.
1944년 유학을 마치고 원산으로 돌아왔다. 이듬해 연인이었던 마사코가 이중섭을 찾아와 결혼하게 됐고 첫아기를 낳았으나 곧 디프테리아로 잃고 말았다.
이중섭은 큰 충격을 받았고 그 슬픔은 나중에 ‘하얀 별을 안고 하늘을 나는 어린이’라는 작품으로 승화됐다.
1952년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두 아이가 영양실조에 걸리자 부인 마사코는 일본인 귀항선에 몸을 맡기게 되고 이중섭은 생이별의 외로움과 지독한 생활고를 술로 달래면서 몸과 마음마저 점점 쇠약해져 갔다.
어렵게 마련한 개인전마저 은지화가 춘화라는 오명을 뒤집어 쓴 채 전시장에서 철거되고 팔린 작품 값마저 떼이게 되면서 끝 모를 상실감과 자괴감에 빠져들게 된다.
마침내 영양실조와 간장염을 앓던 이중섭은 조현병이라는 정신병까지 얻게 되면서 1956년 서울 적십자 병원에서 지켜봐 주는 이 하나 없는 가운데 쓸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이중섭의 작품은 민족사학이던 오산학교시절 임용련 부부에게서 받았던 드로잉의 기초와 일본유학시절 습득한 색채와 감성의 해방을 부르짖던 강렬한 야수파적 요소, 그 자신의 순진무구한 영혼이 지향하던 향토적 이상향 속에서 이뤄지고 있다.
300여점의 작품 속에는 주로 어린이, 소, 물고기, 가족, 새, 연꽃 등등 우리의 전통적이면서도 향토적인 소재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중섭은 다양한 재료를 이용해 그림을 그렸다. 캔버스에다 유화로 그린 것보다 종이에 과슈를 쓴다든가 시험지, 합판 등에다 닥치는 대로 그린 것이 더 많다.
물론 이런 것들은 극심한 가난 속에서 이루어진 소산이다. 그중에서도 압권은 역시 담배속지인 은박지에 그려낸 은지화들이다.
조그마한 담배은박지에 송곳이나 못, 손톱 등으로 새기듯이 그려내고 가끔은 채색도 했다. 이번 전시에 나오는 ‘가족’이라는 작품은 아주 잘 짜여진 구도 속에 그의 네 가족이 모두 표현돼 있다.
아빠에게 조르듯 엉겨있는 두 아들과 편안하게 누워있는 엄마의 모습이 아주 단란하고 행복한 가정을 묘사하고 있다.
가족과 생이별을 겪고 있는 이중섭이 꿈에도 그리던 모습인 것이다. 작은 은박지 구석구석에 그의 애절한 소망이 배어있는 듯하다.
박해정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