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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 게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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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 게바라
  • 전민일보
  • 승인 2014.02.04 11: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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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상록 농촌지도사

흔히 엄친아라고 얘기한다. 하지만, 정말 이런 인물이 있다. 모든 것을 갖췄지만 모든 것을 내놓았던 인물. 사람들은 그를 ‘남미의 예수’라고 부르기도 하고 ‘20세기의 가장 성숙한 인간’으로 칭송하기도 했다. 너무도 맑아서 언젠가부터 대중의 상품이 돼버린 사나이.  

 

 체 게바라(Che Guevara). 어느 순간 그는 젊음이의 옷에 담겨있다. 제임스 딘(James Dean)과는 또 다른 형태로 젊음의 아이콘이 된 것이다. 로베스피에르(Robespierre), 레닌(Lenin), 카스트로(Fidel Castro)의 강렬함을 넘어선 그에겐 혁명가라는 수식어로 모두 담을 수 없는 부족한 그 무엇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르헨티나인으로 태어나 편안한 삶을 살 수 있었던 그였지만, 그는 의사로서의 삶이 아닌 쿠바 혁명의 중심에 선다. 혁명을 성공 시킨 후엔 라카바니아요새 사령관, 국가토지개혁위원회 위원장, 중앙은행 총재, 공업 장관 등을 역임한다. '쿠바의 두뇌'!

 

그는 그렇게 쿠바정권의 기초를 세워나갔다. 그의 삶이 여기까지였다면 그는 혁명가로만 불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달랐다. 1965년 돌연 쿠바의 모두 공직에서 물러난 후 또 다른 혁명의 땅으로 떠난 것이다. 그는 아프리카를 거쳐 볼리비아의 정글로 들어간다. 그에겐 쿠바 혁명을 넘어선 원대한 목표가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남미 전체의 혁명이다. 하지만 이번엔 성공하지 못한다. 

 

 1967년 볼리비아 산중에서 정부군에게 사로잡힌 그는 곧바로 총살당한다. 처형은 볼리비아군이 했지만 그를 잡을 수 있게 정보를 제공한 것은 미국이었다. 미국은 자신의 손에 게바라의 피가 묻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1997년 6월 볼리비아의 공동묘지에서 발견된 그의 유해는 같은 해 10월, 전사한 당시 그의 참모들과 함께 쿠바 산타클라라 시의 기념관에 매장되었다. 그가 총살된 후 꼭 30년이 되던 해였다. 그의 최후에 대한 증언은 엇갈린다. 우리는 여전히 그를 '무릎 꿇고 살기보다는 서서 죽는다'고 했던 전사로 기억한다. 하지만 그를 총살하는 현장에 있던 볼리비아군 관계자는 다른 증언을 하고 있다. 게바라가 죽음 앞에서 삶에 대한 애착으로 비굴한 모습을 보였다고 얘기한다.

 

 한국사에서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의 최후와 비견된다. 노론과 소론은 그의 최후에 대해서도 극단적으로 다른 얘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읍에서 사약을 받을 당시 모습에 대해, 한쪽은 성인의 모습으로 다른 한쪽은 삶에 대한 미련에 추태를 보이다 죽는 노인으로 기록하고 있다.

 

삶만큼이나 최후의 죽음에 대해서까지 엇갈린 시각. 체 게바라는 그래서 여전히 논쟁적이다.

1956년 멕시코에서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자신이 걸어가야 할 길을 명확히 하고 있다. "저는 예수와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습니다. 저들이 나를 십자가에 매달아두게도 하지 않을 것이며 어머니가 바라시는 방식으로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어머니가 바라는 방식이란 아마도 사랑과 온유함의 길이었을 것이다. 그가 어머니의 바람을 따를 수 없었던 것은 그가 편안함 삶을 마다하고 혁명가의 길로 나선 바로 그 이유 때문이리라.

 자녀들에게 남긴 마지막 편지에서까지 그는 혁명가로서의 자질을 말하고 있다.
"이 세계 어디선가 누군가에게 행해질 모든 불의를 깨달을 수 있는 능력을 키웠으면 좋겠구나. 너희 자신에 대해 가장 깊이. 그것이 혁명가가 가져야할 가장 아름다운 자질이란다."

 완벽한 혁명가. 하지만 그를 한 단어에 담기엔 너무 입체적인 인물이다. 그를 알면 알수록 의문은 쌓여간다. 의사, 고고학자, 시인, 언론인, 혁명 후에는 쿠바국립은행의 총재.

 한 편으론 젊은이의 티셔츠를 곧잘 장식하는 한 장의 사진 속에도 보인다.  거기서 그는 대중적인 인물이 되어있지만 복장은 베레모에 군복을 하고 있다.  또한 골프를 치면서 시거를 즐기며 많은 여인과 염문을 뿌린 모습은 기존 혁명가의 이미지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이토록 다양한 유형의 원천은 과연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게바라의 평전을 쓴 장 코르미에(Jean Cormier)는 그에 대해 이렇게 답하고 있다.
"그는 다양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 다양성은 항상 일관되게 '우리'를 향해 있다."
 
 이제 그가 최후를 마치는 장면으로 돌아가 보자.
 총구를 겨눈 볼리비아군 장교가 물었다. “게바라, 당신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소?” 그러자 체는 대답했다. “혁명의 불멸성에 대하여 생각하고 있는 중이오.”
 
 체 게바라의 최후로 어울리는 것은 앞의 장면이 아닌 바로 이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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