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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랙터 굉음에 찢기는 새파란 배춧잎 보며 1년 헛수고 가슴 숯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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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랙터 굉음에 찢기는 새파란 배춧잎 보며 1년 헛수고 가슴 숯덩이
  • 최승우
  • 승인 2006.11.14 20: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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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두려운 작은 이웃들-<3>배추밭 갈아엎는 농민

-200평 수확 배추 고작 15만원선
-품삯도 못건져 손댈수록 빚더미
-땡볕 구슬땀 불구 빈손 한숨만



“올해는 참으로 힘든 겨울이여, 한 평생 농사만 알고 살았는데 내년에는 뭘 심어야 할지... 농사를 지어야할지 말아야할지도 모르겄어.”

고창군 공음면의 한 배추밭.

5000여 평에 달하는 드넓은 배추밭에 트랙터 한 대가 들어가 땅을 갈아엎고 있다.
새파란 배춧잎은 갈기갈기 짓눌리고 잠시 후, 언제 배추가 심어져있었느냐는 듯 진갈색의 빈 밭이 모습을 드러냈다.
요란한 엔진소리를 내며 배추밭을 누비던 트랙터는 벌써 옆 밭에 심어진 배추밭은 엎고 있다.

허탈한 표정만이 가득한 채 트랙터를 말없이 바라보고 있던 천정권(58)씨는 무겁게 입을 열었다.
“어떻게 키운 배추인데, 하나 뽑아보지도 못하고 그대로 갈아엎어야 하는 심정이야 오죽하겠는가.” 

지난해 산지가격이 포기 당 최고 700원까지 육박하던 배추 값이 올해는 생산비조차 건지지 못할 정도로 폭락했다.
200평 규모의 밭에 심어진 배추가 고작 15만원 선에 거래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배추를 출하하기 위해서는 20여 만원이 훌쩍 넘는 운송비와 인건비를 부담해야 하기 때문에 배추농가들은 눈물을 머금으며 밭을 갈아엎고 있다.

“품삯도 못 건지는 판에 누가 또 돈을 들여서 배추를 시장에 내놔? 돈 빌릴 데도 없고, 그나마 밥이라도 먹고 살려면 그냥 묻어야지.”

천씨는 농사를 외면하는 현실에 대한 억울함을 애써 억누르며 말했다.
“올 가을은 날이 가물어서 밤새도록 물 품어주느라 잠도 제대로 못 잤어, 다행히 큰 비도 안 오고 날씨도 좋아서 배추속이 꽉 찬 풍년이었는데 이 아까운 걸 그냥 묻으려니 속이 타는 고만.” 

지난 8월, 논에서 파랗게 자라는 벼를 보며 ‘올해는 풍년농사 한 번 지어보자’고 다짐했던  천씨는 기대와는 전혀 다른 현실에 넋을 잃었다.
배추농사 말고도 1만 여평의 논에 벼농사를 짓는 천씨는 농촌의 암담한 현실에 대한 걱정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벼농사 죽어라 지어봤자 어디 내다 팔 곳도 없지, 그런다고 정부가 사주기를 하나 국민들이 사주기를 하나.”

천씨는 “FTA다 뭐다 해서 나라가 농민들을 외면하고 국민들은 값 싼 수입 농산물을 찾는 현실이 너무 안타깝다”며 “농촌은 이미 희망을 잃었다”고 말했다.

대학생 자녀를 3명이나 둔 천씨.
자녀들의 학비는 고사하고 당장 생활비조차 막막한 처지가 돼버린 천씨에게 올해 겨울은 혹독하다 못해 잔인한 계절로 다가오고 있다.

천씨는 “농사짓는 답시고 빚더미에만 올라앉았는데 올해 겨울을 어떻게 나야 할지 모르겠다”며 담배 한 개피를 꺼내 입에 물었다. 최승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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