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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우리를 구별하지 못하는 행동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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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우리를 구별하지 못하는 행동들
  • 전민일보
  • 승인 2011.03.30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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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9일 고속도로를 거쳐 강원도 양구로 가는 도중에 점심을 먹었다. 요즘 물가가 비싸서 입에 맞는 음식을 사먹기도 겁이 났었지만, 식이요법을 해야 하는 나에게는 준비해간 도시락이 제격이었다. 그래서 휴게소 식당에 가는 것이 미안하여 가장 외곽진 곳에 차를 대었다.
한 참 식사 중에 다른 차가 앞에 와서 멎었다. 어쩌면 우리처럼 휴식을 하려는가 보다 하였는데, 주인과 함께 내린 강아지는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더니 그만 실례를 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그 주인은 일부러 차안에까지 가서 휴지를 가져다 정성스레 닦아주었다. 그 모습을 보니 정감스러워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잠시 후 휴게소에서 산 커피를 마시는가 싶었는데 이내 담뱃불을 붙였다.
개 주인은 한참을 서있으니 다리가 아팠는지 그냥 쪼그려 쏴 자세를 하고 앉았다. 군대도 안 갔다 온 여자가, 나풀나풀 짧은 미니스커트를 입은 여자가, 머리를 곱게 손질하고 멋을 부린 여자가, 하이힐을 신어서 다리가 늘씬한 쩍벌녀는 가장 편한 자세를 잡는다고 빙빙 돌기까지 하였다. 그 모습은 마치 똥마려운 강아지가 자리를 잡던 것을 닮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저 안쪽에서 붙어있는 스타킹을 신어 내용물이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내와 나는 아들의 결혼문제로 찾아가던 중이었는데, 사람의 속을 알 수 없으니 저런 며느리 얻을까 두렵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는 사이 빨간 리본을 머리에 얹은 강아지를 끌어안은 그녀를 태운 차량이 휴게소를 빠져나갔다. 다음은 확인해보나마나 뻔하였다. 그녀가 지나간 자리에는 담배꽁초가 짓이겨져있었고, 강아지를 깨끗이 한다고 닦아주었던 휴지도 날아다녔다.
나는 그녀가 담배를 태우든지, 담배를 피우든지 상관하지 않는다. 누가 뭐라해도 담배에 관한 것은 순전히 그녀의 자유임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녀가 버린 담배꽁초는 우리의 몫으로 남았다. 자기가 해야 할 일을 다하지 못하면 더불어 살아가는 우리가 그 책임을 나누어야 하는 운명체이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그녀의 귀여운 개가 생리작용에 의해 배설을 하는 것은 순전히 그 개의 몫이다. 그러나 개에게는 공중도덕이라는 것이 없으니 그 개의 배설물에 대한 뒤처리는 당연히 주인의 몫이다. 따라서 아름다운 그녀가 자기 몫을 하지 않으면 그 뒤처리는 우리의 몫으로 남게 되는 것이다.
우리와 나를 구별하지 못하는 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이다. 그 당사자는 그렇다 쳐도 같은 시대에 공동으로 살아가는 우리가 불행해지는 것은 무슨 잘못이란 말인가. 어떤 사람이 외로워서 개를 키우든, 시간이 많아서 강아지를 기르든, 보디가드로 개를 모시든 나와는 상관이 없다. 그 사람이 개에게 정을 주고 말고도 상관하지 않는다. 그러나 세상에는 개에게 정을 주는 것보다 더 급한 것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예전에 개를 풀어놓고 키우던 시절이나 방안에 가두고 키우는 지금이나 길가에 개똥이 굴러다니기는 마찬가지니 이것은 어떤 연유일까. 심지어 애완뱀을 키우는 마당에 애완견을 키우지 말라는 얘기가 아니다. 내가 해야 할 일이 있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따로 있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내가 할 일을 남에게 미루지 말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다른 마을이나 다른 국가에 떠넘기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지켜야 할 공중도덕을 남에게 떠넘기고, 우리가 지켜야 할 국토를 남의 손에 떠넘기고, 우리가 지켜야 할 먹을거리안전을 남의 손에 떠맡긴 숙제는 어떻게 풀어야 할까. 추위가 물러가자 조류독감이 소탕되었다는데, 구제역은 소돼지의 씨가 말라야 진정될 것인지 걱정스럽다.
일본의 지진을 보면서 국민들에게 반강제로나마 성금을 내야 된다는 분위기로 몰고 가는 것은 온당하지 않는다. 남을 돕는 일은 훌륭한 일임에 틀림없으나 국가나 개인이 우리보다 잘사는 나라, 자신의 힘으로 극복하고도 남을 나라,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나라, 필요할 때만 감성을 자극하는 나라에까지 우리 관청이 나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우리 주변에는 우리가 나서야 할 곳이 너무나 많다. 그리고 나와 우리를 구분하지 않는 행동도 널려있다. 내가 할 일 그리고 우리가 할 일을 잘 구분하였으면 좋겠다. 

한호철 / 한국농촌문학회 호남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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