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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 받은 땅 전라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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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 받은 땅 전라북도
  • 전민일보
  • 승인 2011.03.15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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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부터 고향 어른들께서 ‘전라북도는 복 받은 땅이야’ 하시는 이야기를 자주 들어왔다. 나는 왜 그런 말씀을 하시는지 잘 몰랐다. 어른들께 전라북도를 왜 복 받은 땅이라고 말씀하시는지 여쭈어 보면 항상 대답은 같았다. ‘드넓은 평야를 주셔서 감사하지!’ 그때에는 그 안에 무슨 뜻이 숨어있는지 잘 몰랐었다. 아마도 먹을 것에 굶주리던 시절, 농경시대에는 넓은 평야가 있다는 것은 가장 큰 복이었지 않았을까. 농업기술이 발달하지 못하여 이 넓은 평야를 제대로 일구지 못하고 춘궁기를 어렵게 넘겨야 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래서 보릿고개라는 옛말이 생기기도 하였다. 그나마 이렇게 농사지을 수 있는 넓은 땅이 있었으니 죽이라도 먹을 수 있었다고 생각하는 감사한 마음의 표현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어른들이 복 받은 땅이라고 하신 말씀은 충분히 이해가 되고도 남는다. 전세계적으로 공기가 오염되고 이로 인한 온난화 현상이 계속되어 기상이변이 일어나고 재앙이 끊이지 않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 공기 맑고 물 맑은 자연을 자랑하는 땅인 전라북도는 그야말로 ‘전라복도(全羅福道)’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예로부터 후백제의 수도 완산주가 있던 전주, 선화공주와 마동이의 사랑이 꽃핀 금마 미륵사지, 적장을 품에 안고 강물에 뛰어들어 목숨으로 나라를 지킨 논개의 고향 장수, 필봉농악의 고장 임실, 일부종사하겠다고 절개를 지키던 춘향의 고향 남원, 문학의 대가 서정주의 고향 고창, 여유와 풍유를 즐길 줄 알던 선조들의 판소리와 시조가 살아 숨 쉬는 자랑스런 내 고장 전라북도는 수많은 희노애락(喜怒哀樂)의 역사를 품에 안은 채 묵묵히 세월을 낚아 올려 오늘을 창조한다. 숱한 세월의 인고를 겪으면서 말이다. 아직도 인고는 계속되고 있다. 지금까지 낚아 올린 세월 속에 담겨있을 수많은 역사를 지금도 써 내려가고 있는 것이다.
  오늘 아침 출근길에도 하얀 비닐 옷을 입고 어젯밤을 뜬 눈으로 지샌 듯한 여자 공무원 한 분이 구제역 방역 턱 앞에 서서 지나가는 차량들을 점검하고 있었다. 긴긴 겨울을 담당 공무원들은 그렇게 지냈다. 그리고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유난히도 추웠던 지난해 겨울, 추위와 싸우기도 힘든 나날들을 그들은 끝이 보이지 않는 구제역과 싸우고 또 싸웠다. 인간들의 싸움이라면 타협이라도 해 볼 일인데 구제역이라는 고약한 놈은 타협할 줄도 모른다. 충남에서 익산 망성면에 인접한 홍성까지 구제역이 전염되었다는 비보를 접했을 때 우리 도민들은 긴장하였다. ‘전북은 막아야 한다. 방어선을 지키지 못하면 복 받은 땅 전북에 수많은 소와 돼지들이 수난을 당해하게 될 것이다.’ 이런 생각에 이르자 자식처럼 키우던 축산농가 농민들의 망연자실할 모습이 주마등처럼 내 눈앞에서 춤을 춘다. 강원도에서 충청도, 경상도까지 수많은 농민들의 땀과 피가 땅에 묻혔다. 애지중지 기르던 가솔들이 땅에 묻혔다. 농민들의 꿈과 희망도 일순간 한꺼번에 땅에 묻혔다. 얼마나 가슴 아픈 사연들이 묻혀버렸는지 말로는 다 헤아릴 수 없다. 구제역과의 전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몸을 불사르며 고생하였지만 그 결과가 좋지 않아 헛수고로 돌아갔다. 심지어 종축시험장마저도 원인 모를 이유로 구제역을 피해갈 수 없었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었다. 직원들은 집에 갈 수도 가족을 만날 수도 없었다. 그저 속옷 챙겨다 주는 아내를 먼발치에서 손 흔들며 보내야 하는 이별 아닌 생이별의 아픔도 아랑곳하지 않던 구제역이 야속하기만 하였다.
  그러나 복 받은 땅 전라북도는 구제역의 침략을 사전 봉쇄하였다. 이는 누가 뭐라고 해도 오늘 아침 내가 만났던 소독 전선을 지키는 수많은 공무원들과 묵묵히 응원하는 도민들의 성심이 있었기에 가능하였다. 한겨울에 소독약의 세례를 받은 차량은 달릴 수가 없었다. 바로 얼어붙은 소독약 얼음 때문에 앞이 보이지 않아 도저히 달려갈 수가 없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도로변에 차를 세우고 시린 손을 호호 불어가며 앞 유리창을 닦아내어야만 했다. 불평할 수도 없었다. 청정 전북을 지켜내는 것은 오로지 하나, 참고 견디는 것 그뿐이었다. 서로가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일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이렇게 긴 겨울을 보내야 했다.
  이제 봄이 온다. 낮은 곳으로부터 조용히 들려오는 봄의 소리가 내 어머니의 발자국 소리마냥 간절히 기다려진다. 이제는 안심이겠지. 안도의 숨을 길게 내쉬어 본다. 먼 훗날 복 받은 땅 전라북도에는 2010년 겨울 구제역은 없었다고 도민들은 이야기 할 것이다. 마치 전쟁터에서 적장을 쓰러뜨린 통쾌함으로……

전주삼천초등학교 교장 김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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