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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돋이]주자(朱子)와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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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돋이]주자(朱子)와 예수
  • 전민일보
  • 승인 2011.01.11 09: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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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와 천주의 학문은 우리 유교에 주희(朱熹)와 육구연(陸九淵)이 있는 것과 같다.’라는 구절에 이르러서 저도 모르게 머리털이 서고 간담이 떨리며 가슴이 서늘해지고 뼛골이 오싹하였습니다.” [고종실록 17년 10월 1일] 

병조정랑 유원식이 올린 상소문의 내용이다. 

황준헌(黃遵憲)이 쓴 조선책략(朝鮮策略)에 나온 내용 중 성현모독(聖賢冒瀆)이 문제가 된 것인데, 성리학의 나라 조선에서 감히 예수 따위를 주자와 같은 반열에 놓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로부터 불과 130년이 지난 지금 시대는 변했다. 
 
한국 사회의 힘 있는 주류는 주희 따위가 감히 예수와 비교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로마의 핍박을 받던 기독교가 결국은 제국을 점령해버린 것과 비교해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천주교를 포함한 한국 기독교역사는 세계사적으로도 기념비적이다. 그것은 단순히 현재 세계에서 제일 큰 교회가 있다거나 신도수의 비약적인 성장과 같은 것에 있지 않다. 한국 기독교는 세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자생적인 수용에 의해 탄생되었다.
 
또한 바티칸 벽면을 수놓고 있는 조선순교자 벽화에서 볼 수 있듯이 수많은 피흘림이 있었다. 나아가 기독교가 한국 역사와 사회에 기여한 부분은 평가받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런데, 지금 교회에 대해서 묻게 된다. 주희와 비교되는 예수를 참을 수 없었던 조선 유학자들과 오늘의 승자가 된 기독교인의 차이가 무엇인지?
 
여리고성을 돌며 성의 붕괴를 기원했던 여호수아의 모습을 한국 열혈신도들의 절 탑돌이에서 보게 된다면 이것은 또 어떻게 해석해야 되는지?
 
대통령이 다닌다는 강남의 초대형 교회에서 일어난 목회자들간의 활극은 어떻게 감상해야 되는지? 

지금은 돌아가신 목사님께서 내게 들려주신 말씀 한 구절이 생각난다.

“신앙은 사람을 보게 되면 실패하게 된다. 예수님만 바라봐야 실족하지 않는다.”
 
내면의 울림으로는 지금도 가슴깊이 간직하고 있는 이 말씀이 사회의 현실에서는 공허하게 들리는 부분이 존재한다.
 
불교도, 성리학도 민중의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고 시대적 소명을 다하지 못하면 역사의 심판에서 예외가 아니었음을 역사가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모범적인 다종교국가인 한국에서 괜한 풍파를 일으키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자연적인 치유가 가능한 상처에 괜한 부스럼만 만들어서 병을 악화시키고자 하는 불순함은 더욱 없다. 

다만, 누구나 알면서도 성역으로 치부해버리는 사이 치유가 불가능해지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기우(杞憂)를 담고 있을 뿐이다.
 
한국 기독교는 궁핍과 관용의 정신을 회복해야 한다.
 
유원식이 상소문에서 얘기한 성현모독을 주체만 바꿔서 신성모독으로 업그레이드한다거나, 물질의 유혹에 함몰되었던 고려말의 불교를 닮아간다면 기독교는 물론 한국사회의 비극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시인이기도 한 중앙의 어느 기자는 내게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현재 한국언론은 정치권력으로부터는 어느정도 독립적이라 얘기할 수 있다. 하지만, 아직도 존재하는 두 개의 성역이 있다. 하나는 광고주이고, 다른 하나는 종교이다.”
 
불순하게 보일지도 모를 이글이 실리려면 그런 점에서 용기가 필요할지 모르겠다.

사족하나, 나 역시 마음이 가난해지기 원하는 한 마리 양(羊)일 뿐이다.

장상록/ 완주군 농기센터지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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