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도처에 참으로 많은 길이 유행처럼 뚫렸다. 고속도로나 철길, 국도와 지방도 같은 차량교통로 말고 사람들이 걸어서 다니는 길이 수 십, 수 백 군데 뚫렸다. 표현을 정확히 하자면 새로 뚫은 길은 아니다. 원래 있던 길을 이리저리 이어주며 사람들이 그 길을 따라 걸을 수 있도록, 또 걸어 보시라고 길 안내를 하고 있는 것이다. 마실길, 둘레길, 올레길... 갖가지 이름을 붙여 놓고 이 동네 저 동네와 들길, 산길, 강둑길을 돌아 다녀보라고 적극 권유하고 있는 주체는 대개가 그 지역의 자치단체다. 기존 길을 탐사하고 걷기 좋은 길을 골라내어 연계 코스를 만들고, 길 폭을 넓히거나 장애물을 제거하는 식으로 걷기 좋게 만들어주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당초 ‘도보여행’의 멋과 맛이 알려진 것은 오래 전부터 ‘길 따라 걷기’를 즐겨 온 도보여행가들의 발품에 힘입은 바가 크다. 걷기 좋은 길을 찾아내고 뭇사람들에게 그 길의 아름다움을 예찬하며 소개한 이들의 정성도 깊다.
이렇게 해서 오랫동안 쌓여 온 ‘도보여행’의 인기에다 기름을 부은 것이 지자체들이다. 지자체들이 ‘도보여행’이라는 트렌드에 맞춰 갖가지 이름을 붙여 ‘길’을 내놓은 것은, 지역문화관광상품을 발굴하려는 지역 마케팅의 일부라 할 수 있겠다. ‘길’이란 것이 이른바 시대의 인기상품일진대, 어떤 길이건 기를 쓰고 만들어 내어 자기 지역의 문화관광상품으로 등장시키려 하는 건 당연한 노릇이다. 지자체마다 여러 방면에서 자기 지역 살리기에 온갖 노력을 경주하고 있는 바, 큰 돈 안들이고 지역의 문화관광상품을 발굴하는 일에 소홀히 할 지자체는 없을 테니까.
허나 ‘도보여행’이 유행할수록 ‘길’들이 몸살을 심하게 앓는 현상을 보며, 과연 이걸 ‘성장통’이라 받아 들일지, 아니면 ‘긁어 부스럼’이라 해야 할지 고민스럽다. 제주 올레길을 필두로 둘레길, 마실길 등 이름도 다양하게 조성된 도보 여행 코스는 전국에 수십 곳이다. 그러나 사람들의 발길을 맞이하기 위해 공들여 마련한 이 도보여행 코스에 막상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들게 되니 사정이 달라졌다. 길 곳곳에 함부로 버려지는 쓰레기며 지나는 이들의 왁자지껄한 소음이 이어지고, 걷자고 내놓은 길에 함부로 들이댄 차량들, 심지어 노상방뇨나 농작물 도난까지 부작용이 끊이지 않는다.
오죽하면 지리산 둘레길 주변 어느 마을 주민들이 둘레길 폐지를 요구했겠는가. 하기야 공중파 텔레비전의 인기 프로그램이 이곳에 출연진을 보내 촬영까지 했으니, 인기는 급상승한 지리산 둘레길이 혼잡지경에 빠지는 것은 예상 못할 일도 아니다.
지금 전국의 도보 여행 코스는 갖가지 부작용에 시달리고 있다. 어느 지자체가 발굴해 내놓은 도보여행 코스가 아무런 부작용을 겪지 않는면, 어쩜 그 길은 도보여행자들로부터 별 관심을 얻지 못해 잘 팔리지 않는 ‘상품’일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새로운 개념의 여행 형태로 주목받고 있는 도보 여행은, 자연 속에서 사색과 여유를 느끼는 길을 선사한다는 처음 뜻과 다르게 변질해 가고 있다. 기껏 내놓은 상품이 팔리지 않는 것은 고민거리일 테지만, 막상 상품이 잘 팔리기 때문에 부작용이 수반되는 건 딜레마다. 지금 도보여행코스들이 겪는 몸살을 두고 그저 ‘성숙하지 못한 시민의식 때문’이라고만 탓하기에는 이 상품을 내놓은 ‘지자체’들의 대책이 아직은 미흡한 것 같아 보인다. 길이 잘 팔린다니까 우리도 동네길 한 번 팔아 보자 하는 식의 ‘길’이어선 곤란하다. 길을 내놓았으면 그 길을 걷는 이들 뿐 아니라 주변 마을과 자연환경, 그 길 자체의 향기를 아름답게 조화시켜 내는 세심함이 중요하겠다. 냉장고 한대를 팔아도 사후관리가 있지 않은가. (독자권익위원, 전북의정연구소 주간 金壽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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