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광복절이 찾아옴은 신석정(辛夕汀) 시인의 ‘꽃덤불’을 다시 찾아 읽을 생각을 한다. “태양을 의논(議論)하는 거룩한 이야기는/항상 태양을 등진 곳에서만 비롯하였다./달빛이 흡사 비오듯 쏟아지는 밤에도/우리는 헐어진 성(城)터를 헤매이면서/언제 참으로 그 언제 우리 하늘에/오롯한 태양을 모시겠느냐고/가슴을 쥐어뜯으며 이야기하며 이야기하며/가슴을 쥐어뜯지 않았느냐?”
신석정은 조국의 현실을 괴로워하며 미래에의 소망을 이어서 노래한다. “그러는 동안에 영영 잃어버린 벗도 있다./그러는 동안에 멀리 떠나버린 벗도 있다./그러는 동안에 몸을 팔아버린 벗도 있다./그러는 동안에 맘을 팔아버린 벗도 있다./그러는 동안에 드디어 서른여섯 해가 지나갔다./다시 우러러보는 이 하늘에/겨울밤 달이 아직도 차거니/오는 봄엔 분수(噴水)처럼 쏟아지는 태양을 안고/그 어느 언덕 꽃덤불에 아늑히 안겨 보리라.” 시적 자아는 일제하의 고통을 벗어났으나 아직 진정한 광명을 찾지 못한 민족의 고뇌를 안타까워한다. 우리는 시의 후반부에서 미완의 광복에 대한 시인의 가슴 아픔을 함께 맛보고, 특히 일본의 제국주의적 행태를 떠올리며 “겨울밤 달이 아직도 차거니”가 분명한 현실임을 깨닫는다.
광복 65주년을 맞는 즈음, 분단 조국은 아직 겨울밤이요, 분수처럼 쏟아지는 태양을 기대하지만 하늘엔 달이 떴을 따름이며,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한반도의 체온은 냉기 그대로다. 특히 최근 ‘천안함 침몰’ 사건이 그러하다. 동해를 바라보며 독도의 수난을 떠올리면 광복의 완성은 일본이 역사 왜곡 또는 지난 만행을 참회하는 그 어느 날에나 이루어질까, 앞날의 막막함을 달랠 길이 없다.
분단 고착화 현실에다가 일본의 군국에 대한 향수는 쉽게 사라질 가벼운 현상이 아니다. 그리하여 많은 지식인들이 국가의 정체성이 흔들리는 지금, 다시금 무엇이 그리고 어떻게 하는 것이 시인의 노래처럼 ‘그 어느 언덕 꽃덤불에 아늑히 안겨 보는’ 진정한 광복인지, 오래된 질문을 다시 묻고 있다.
전주보훈지청 보상과 / 유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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