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반평생을 넘도록 장사했지만 요즘 같은 때는 첨 봐, 어떻게 된 게 물건 사러 온 사람보다 장사하는 사람이 더 많아.”
전주시 중앙시장에서 30년이 넘도록 옷 장사를 해 온 이순례(60)씨.
추석이 채 보름도 남지 않았지만 텅 빈 시장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이씨의 얼굴에는 근심만 가득하다.
“며칠 있으면 추석인데 손님하나 없는 것 좀 봐, 전주에 마트 들어서면서부터 시장대목은 없어졌어.”
이씨는 “10년 전까지만 해도 명절 때만 되면 사람들이 넘쳐 발 디딜 틈이 없었다”며 “이제는 나이든 사람들이나 시장을 찾을 뿐 젊은 사람들을 찾기 힘들다”고 말했다.
실제로 시장 곳곳에서는 60~70대 노인들만이 간간히 물건을 구경하러 다닐 뿐 젊은 새댁들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처럼 재래시장의 경기가 땅바닥에 떨어지자 시장에서 일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40대 이상의 장·노년층이다.
이씨의 20년 지기 장사 친구인 강모씨(58)는 “내 품삯도 제대로 안 나오는데 젊은 사람들이 여기서 어떻게 일을 할 수 있느냐”며 “이렇게 빚만 쌓이다 시장을 떠나야 할 지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중앙시장 인근에 위치한 모래내시장도 썰렁한 분위기만 감돌뿐 손님들을 찾아보기 힘들다.
지나가는 손님을 붙잡고 흥정하는 상인은 겨우 10여명. 나머지 가게 상인들은 앉아졸거나 먼 산을 바라보고 있다.
"한 10년 전만 해도 시장 골목마다 사람들이 하도 많아서 발 디딜 틈이 없었지, 그때는 장사하는 재미가 절로 났었는데 이제는 일할 재미가 나지 않아."
3평짜리 생선가게를 운영하는 김영임(64)씨는 "가게 유지비와 일당을 채우려면 하루에 30만원어치는 팔아야 하는데 요즘은 매출 10만원 올리기도 힘들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옆 가게에서 건어물을 파는 상인도 "아침 일찍부터 아직 밤 한 되도 못 팔았다"며 "매달 25만원씩 내야하는 가게 세를 감당하지 못해 곧 장사를 접어야 할 것 같다"고 푸념했다.
70~80년대 서민들의 ‘백화점’이었던 재래시장이 불황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시장 곳곳에서 햇과일과 싱싱한 생선들이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지만 시민들은 이들을 외면하고 있다.
상인들도 언제 찾아올 지 알 수 없는 호황을 기다리다 지쳐 이제는 절망감만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모래내시장에서 18년째 건어물 장사를 해온 최관호(40)씨는 "요즘처럼 장사가 안 된 적은 없었다"며 "이제 어떻게 아이들 학비를 대야 할 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최씨는 또 “대형마트들이 편하고 쾌적하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고향의 정을 생각하면 한번쯤은 찾아와 줄 수 있지 않느냐”며 “파랗게만 한 가을하늘이 이제 얄밉다”고 말했다. 최승우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