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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유의 씨앗 뿌린 법정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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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유의 씨앗 뿌린 법정스님
  • 전민일보
  • 승인 2010.03.17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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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 석가가 싯타르타 태자 때 품었던 의혹은 다름 아닌 삶과 죽음의 질곡이었다. 출가를 만류하는 부왕에게 태자가 던졌던 말 “저에게 죽지 않는 방법을 알려 주십시오. 그러면 출가를 포기하겠나이다.”
  모든 사람들이 체념해버린 그 죽음의 질곡에 싯타르타 태자는 결연히 회의의 화살을 꽂은 것이다. 그런 뜻에서 보면 불교는 이 죽음의 회의에서부터 그 첫발을 내 디딘 종교라고 말 할 수 있다. 
  비움의 충만을 실천한 법정스님이 흰 연기로 사라졌다. 참나무 장작더미에 불을 올리는 거화(炬火)의식을 마친 추모객들은 스님은 불길 속에 계시지만 스님 가르침은 연꽃처럼 불길 속에서 다시 필 것이라는 뜻의 ‘화중생연(火中生蓮)’을 외쳤다.
  산문집 ‘무소유’로 널리 알려진 법정스님은 “내가 죽으면 거창한 다비식이나 화장의식을 치루지 마라. 입던 승복 그대로 입혀서 즐겨 눕던 대나무 침상에 뉘여 그대로 화장하라. 사리 따위를 수습하려들지 마라. 더욱이 시줏돈 걷어서 탑 같은 것은 절대 세우지 마라”고 유지를 남겼다.
  법정 스님은 입적(入寂) 직전 “내 것이라고 하는 것이 남아있다면 모두 맑고 향기로운 사회를 구현하는 활동에 사용해 달라”고 했다. 빈손으로 와 빈손으로 떠남을 몸소 실천한 스님이었다. 생전에 스님 손은 ‘내것’을 남에게 나눠주는 데 열심이었다. 부와 명예와 권력을 좆는 마음이 모든 갈등과 번뇌의 출발임을 새로 일깨웠다.
  법정의 메시지는 철저한 ‘무소유’였다. 산문집 ‘무소유’는 180쇄라는 탈(脫)사바의 기록을 남길 정도로 인기였다. 말과 행적이 달랐다면 그렇게 많은 이가 책을 찾진 않았을 것이다. 법정은 사찰 주지 한 번 지내지 않았다. 병상에서도 자신이 기거하던 강원도 화전민의 오두막을 그리워했다. 한마디로 자연과 하나 되는 삶을 살았다. 
  이렇듯 스스로 지키고 가르쳤던 ‘무소유의 삶’은 맑고 향기로운 울림으로 우리 곁을 맴돌고 있다. 우리 사회의 큰 어른으로서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몸소 보여준 수행자였다.
  세상 사람들은 태어나서 늙어 죽을 때까지 ‘의식주’라는 세 글자를 떠날 수 없다. 이 세 글자가 바로 사람을 죽도록 바쁘게 만드는 것이다.
  의복은 몸을 가리며 추위와 더위를 막아 준다. 음식을 먹지 않으면 배고프고 목마르다. 기거할 집이 없으면 비바람이 몰아칠 때 피할 곳이 없다. 그래서 이 세 글자 중 한 가지도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우리는 흐르는 시간만큼이나 무한한 인연과의 숙명적 관계 속에서 산다. 그 속에서 느끼는 아쉬움과 기쁨의 무게는 삶의 일부가 되고 인생이 된다. 사람을 대상으로 한 이별 중에서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 때다. 그 충격은 삶을 송두리째 부정할 만큼 크다.
  사실 우리가 알고 있고, 겪고 있는 모든 괴로움은 좋아하고 싫어하는 이 두 가지 분별에서 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늙는 괴로움도 젊음을 좋아하는 데서 오고, 병의 괴로움도 건강을 좋아하는 데서 온다. 죽음 또한 삶을 좋아함, 즉 살고자 하는 집착에서 오고, 사랑의 아픔도 사람을 좋아하는 데서 오고, 가난의 괴로움도 부유함을 좋아하는 데서 온다. 
  이렇듯 모든 괴로움은 좋고 싫은 두 가지 분별로 인해 온다. 좋고 싫은 것만 없다면 괴로울 것도 없고 마음은 고요한 평화에 이른다. 그렇다고 사랑하지도 말고, 미워하지도 말고 그냥 돌처럼 무감각하게 살라는 말이 아니다. 사랑을 하되 집착이 없어야 하고, 미워하더라도 거기에 오래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사랑이든 미움이든 마음이 그 곳에 딱 머물러 집착하게 되면 그 때부터 분별의 괴로움은 시작된다.
  이제 법정스님은 우리 곁을 떠났다. 그러나 그가 떠난 한국 사회는 소유욕으로 어지럽고 시기, 질투, 교만, 이기심 등 날로 신음하고 있다. 학력·돈·아파트·계급으로 질주하고 양극화·교육격차·세종시로 막혀 있다. 교회는 날로 대형화 기업화 되고 사찰엔 여전히 잡음이 많다. 법정의 무소유와 소통이 그래서 더욱 그리운지 모르겠다. 법정스님이 뿌린 무소유의 씨앗이 탐스런 열매를 맺어 우리 사회에 오래도록 남기를 바란다. 

신영규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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