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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과 소용돌이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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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과 소용돌이 문화
  • 전민일보
  • 승인 2010.02.03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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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나도 몰랐던 내 모습을 타인이 정확하게 그려내곤 한다.
일본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던 루스 베네딕트가 [국화와 칼]을 통해 놀라울 만큼 일본과 일본인을 분석한 것은 대표적 사례이다.
우리에게도 그런 인물과 책이 있다. 다른 점은 주인공이 오랜 기간 한국에 머문 외교관이자 정치학자라는 차이 뿐이다. 그레고리 헨더슨은 [소용돌이의 한국정치(Korea : The Politics of the Vortex)]에서 한국과 한국인의 가장 큰 특징으로 동질성과 중앙집권을 꼽고, 사회 모든 분야와 개체들이 원자화 된 상태에서 오직 권력의 중심만을 향해 돌진하는 소용돌이로 은유하고 있다.
나아가, 가치의 다원화와 지방분권의 토대가 결여되어 있는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그의 전망은 비관적이다. 교육열까지도 그에겐 소용돌이의 정점에 도달하고자 하는 강렬한 욕망으로 간주되고 있으며, 이런 특성은 개인에 국한되지 않고 조직에 까지 퍼져있다는 것이다.
한국에 부임하는 외교관이나 관련학자들에게 고전이 되어있는 이 책은 한국인을 불편하게 하지만, 우리가 보지 못한 부분을 상당부분 정확히 진단하고 있는 것만은 부정할 수 없다. 
민주사회에서 체계의 제도화는 사회구성원들에게 정당한 권위에 대한 수용을 요구할 수 있는 핵심적인 사항이다. 그것이 헨더슨도 지적한, 정점을 향한 가장 중요한 계단이 되는 교육과 관련된 것 일 때 는 말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그런 이유에서 일까?
한국 교육 제도 만큼 변화무쌍하고 다양한 실험이 시도되는 경우도 없다.   
서울대가 학부나 계열별로 신입생을 모집해온 방식에서 학과별 모집 방식으로 모집단위 일부를 바꾸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1980년대에도 똑 같은 일이 벌어졌었다는 점이다. 학부나 계열별 모집의 취지는 1년간의 대학생활을 통해 구체적 전공을 결정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데 가장 큰 의의가 있다. 문제는, 취지와는 다른 역작용이 훨씬 크고 심각하다는데 있다.
예를 들어, 사회과학계열에 지망한 학생은 1년간의 폭넓은 교양과정을 쌓은 후 구체적인 전공을 결정하게 된다. 정치학, 사회학, 심리학, 행정학 등이 될 것이다. 결정의 순간 어떤 일이 벌어질까? 대학에 입학할 때 사회학에 관심이 있던 수석학생은 1년간의 과정을 통해서 행정고시 준비에도 유리하고 취업도 잘되는 행정학과에 대한 유혹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된다.
특별한 몇을 제외하고는 성적순으로 학과가 결정되는 기형적 상황이 도래하는 것이다. 제도화의 취지가 올바르게 구현되기 위해서는 문화적 토양과 현실적 상황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사회과학을 전공하는 한 행정학과에 가야한다는 생각이 다양성을 해체시킬 정도라면 소용돌이 문화에서 헤어 나오는 것은 요원하기만 하다.
헨더슨이 비관적으로 바라본 소용돌이 문화가 반드시 나쁜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타자가 바라본 우리의 모습에서 필요한 부분만 고쳐 나가면 된다. 신라와 마케도니아가 최후의 승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자신들이 경쟁자에 비해 부족 하다는 사실을 알고 끊임없이 경쟁력을 높여 나갔던데 있다.
한 가지 위안삼아 얘기한다면, 헨더슨 조차도 이런 대목을 남겨 놓고 있다.  
“광적이기까지 한 교육열이 널리 인식된 바와 같이 현대화의 전제 조건이라면, 한국인들은 세계에서 가장 야심적인 국민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장 상 록  /  완주농기센타 지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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