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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뛰’의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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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뛰’의 행복
  • 전민일보
  • 승인 2009.10.27 08: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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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은 만경벌판을 가로지르는 전라선 철길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언덕배기 초가집이었다. 동네가 소쿠리 속 같다고 해서 ‘옴속골’이라 불렀다. 집 앞의 널따란 잔디밭에는 커다란 묘가 군데군데 있어 늦은 하교 길엔 무서움증을 자아냈다. 마을 앞으로는 농수로가 흘러 그곳에서 여름철이면 조개도 잡고 멱도 감았다. 개망초꽃이 흐드러지게 핀 둑길에 매어 놓은 염소가 무서워 돌팔매질을 했던 추억들이 꼬리를 물고 들썩거린다.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면, 내 입가에선 어느새 ‘기찻길 옆 오막살이’란 동요가 맴돌곤 한다. 
 시계가 귀했던 그 시절, 우리 집의 시계는 달리는 기차가 대신해 주었다. 방고래를 들썩이며 동이리역으로 진입하는 서울행 완행열차 시간은 자정쯤이었고, 어머니는 아침밥 짓는 시간을 새벽 첫차에 맞추셨다. 어쩌다 비바람 부는 날이면 기차소리를 듣지 못해서 지각한 적도 있었다. 그 시절 방고래를 들썩여주던 기차가 참 고마웠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숙제나 시험공부도 못하고 학교에 갔을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살았나 싶지만 그래도 불편한 줄도 모르고, 불평하지도 않으며 살았다.   
 내가 처음 기차를 탄 것은 일곱 살 때였다. 외가가 전북 진안이어서 기차를 타고 관촌역까지 가서 다시 버스로 갈아타야했다. 기차는 검은 연기의 힘으로 달리는 줄 알았다. 차창을 닫고 터널을 지났건만 석탄가루가 콧속이며 귓속으로 들어가 까맣게 된 얼굴을 어머니가 수건으로 싹싹 닦아주던 기억이 난다. 내가 만 12세가 넘었는데도 어머니는 으레 내 차표는 반표를 사셨다. 승무원이 무서워 정강이를 구부리고 개찰구를 빠져나갔던 그 때가 그립다.   바로 철둑 너머에서 산 까닭인지 몰라도 동생이 여섯이나 되었다. 다른 애들은 학교에서 돌아오면 놀기에 바빴지만, 나는 큰딸이어서 동생을 보는 게 일이었다. 숙제는 아예 늦은 저녁 이후로 미뤄야만 했다. 어쩌다 친구들과 고무줄놀이를 하다가 내 차례가 되었는데 등에 업힌 동생은 도무지 내리려 하지 않았다. 그럴 때 동생에게 “이따가 ‘뛰뛰’ 보여줄게.” 하면 등에서 얼른 내려왔다. ‘뛰뛰’는 동생이 기차를 일컫는 말이었다. 때마침 대장촌역에서 출발한 기차가 달려오는 모습이 동생의 눈에 들어온 그 순간만은 마음 놓고 놀 수가 있었다. 동생이 울지 않고 기차에 빠져있을 때 나는 고무줄 위에서  곡예를 하듯이 강아지처럼 깡충깡충 잘도 뛰었다.
 익산은 교통의 요지여서 통학생의 수가 통학하지 않는 학생 수보다 많았다. 기차가 연착을 하면 첫 시간 수업을 못하고 학생들이 오기를 기다려야 할 때가 종종 있었다. 그러다가 내가 좋아하는 음악시간이 첫 수업인 날은 기차가 미웠지만, 싫어하는 수학이 첫 시간이거나 숙제를 안 해온 날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으니 도대체 나는 공부를 잘 하는 학생이었을까. 
 여상을 졸업한 나는 담임선생님의 추천으로 전주에 있는 어느 중학교 서무과에 취직이 되었다. 인연이 되려고 그랬던지, 그해 가을 구례화엄사로 수학여행을 갔었다. 기차여행은 분위기를 만드는 요술쟁이라고나 할까. 
 고등학교 1학년 때 여수로 수학여행을 갔을 때도 감성적인 내가 담임선생님의 눈에 띄었고 그 뒤부터 선생님은 나를 예뻐하셨는데, 이번에는 노총각선생의 눈에 내가 띈 것이다. 이런 사연으로 첫사랑의 스파크가 튄 것도 기차 속이었다. 서무과 여직원이 수학여행에 따라나선 것부터가 미리 암시해 주는 영화의 한 장면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의욕이 넘치는 총각선생님의 눈에 막 이성에 눈을 뜬 스물한 살짜리 처녀가 어떻게 보였을까. 그날 밤 화엄사 동백나무 사이에 뜬 달은 청춘남녀의 결합을 예측했을까. 학생들 틈새에서 나를 챙겨주고 보살펴 주었던 추억을 말하자니 갑자기 낯이 화끈거린다.
 새로 이사 온 아파트 역시 전라선 철길 옆이라서 새벽잠에서 나를 일깨워  이 글을 쓰도록 도와주는 걸 보면 기차야말로 영원한 나의 동반자려니 싶다.
 우리 집은 한마디로 철도가족이다. 서울에 살고 있는 큰아들가족들도 KTX가 생긴 뒤부터는 추석이나 설 때면 교통체증으로 고생하는 일 없이 아이들과 기차여행을 즐기며 귀성한다. 용산역에서 익산역까지 소요시간이 1시간 56분이라니, 이 얼마나 고마운 철도인가. 
 올 추석에도 KTX로 익산역에 도착할 시간에 맞춰서 차를 가지고 마중을 나갔었다. 좀 불편하지만 여섯 명이 승용차 안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중에 기차 이야기가 나오자, 초등학생인 귀염둥이 손녀가 느닷없이 재잘거렸다. “할머니, 우린 기차 가족이야.” 그러더니 손자 녀석도 뒤질세라 먼빛으로 보이는 철길을 향하여 “고맙다, 철도야!” 하며 외쳐댔다. 그러자니 할머니인 나도 덩달아 깔깔 웃어댔다. 눈물이 찔끔거릴 정도로 웃었지만 그 까닭을 아무도 알 리 없었다. 다만 핸들을 잡은 할아버지와 할머니인 나 우리 둘만이 아득한 그 옛날 기차 안에서 총각 처녀로서 스파크가 튀었던 사연을 되새기며 빙긋이 미소를 지을 뿐.
 나는 철도가 고맙다는 손자손녀의 여린 손을 꼬옥 잡아주었다. 

최정순 / 행촌수필문학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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