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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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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경제
  • 전민일보
  • 승인 2024.02.06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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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말 러시아의 문호 레프 톨스토이는 나폴레옹전쟁 당시 러시아 사람들의 삶을 그린 소설 ‘전쟁과 평화’의 에필로그에서 ‘역사적 사건들은 사람들의 자유의지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그들이 체감하지 못하는 정치경제적 조건들의 결과로 일어난다’고 갈파한다. 현재 지구상에는 두 개의 전쟁, 곧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해당지역 사람들의 삶을 불행하게 만들고 있다. 전쟁의 원인으로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의 영토 야욕,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극단주의자들이 서로 지탱해주는 대립 등을 말할 수도 있고, 그 근저에 있는 다른 원인들을 얘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전쟁들은 해당 지역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 사람들의 삶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 중 경제적 영향이 가장 클 것이다. 전쟁과 경제의 관계를 생각해보자.

경제적 관계를 모든 사회현상의 밑에서 움직이는 힘으로 보는 입장에서는 경제가 전쟁의 원인이다. 18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중반에 이르는 이른바 제국주의 시대의 전쟁들을 뒤돌아보면 이러한 견해는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이 시대에는 각국이 생산비용면에서 비교우위를 지닌 상품을 서로 수출하는 상호이익의 거래가 아니고, 제국주의 국가들이 힘으로 식민지를 수탈하는 일방적 거래가 이루어졌다. 레닌이 분석한 것처럼, 원료공급과 시장획득을 위한 제국주의 국가들간의 각축은 전쟁으로 치닫게 되었다. 경제가 전쟁의 원인이 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설명이 21세기에 벌어지고 있는 전쟁에도 적용되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물론 전쟁의 경제적요인은 찾으려면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이 시대 전쟁과 경제의 관계에서 핵심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가 요점이다. 필자는 21세기에 들어와서 경제가 전쟁으로 가는 길이 아니고 평화로 가는 길이 되었다고 말하고 싶다.

경제가 전쟁의 원인이 아니라 전쟁을 억제하는 기능을 하고 있다. 무엇이 달라졌는가. 가장 큰 환경변화는 20세기 말에서 21세기 초에 이루어진 경제적 세계화다. 세계가 자발적인 투자와 교역이 이루어지는 하나의 경제권이 되었다. 제국주의 전쟁 뒤 20세기 후반에 있었던 자본주의 진영과 공산주의 진영의 체제경쟁이 자본주의 세력의 승리로 끝나자, 유일한 초강대국인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화가 급속히 진행되었다. 제국주의 시대에서와 마찬가지로 시장의 확대는 자본의 논리와 자본의 힘에 의해 이루어졌다. 이전과 다른 점은 무력에 의한 수탈이 아니고 자발적 투자와 교역의 확대가 이루어진 것이다. 글로벌 경제권에서 이루어진 투자와 교역의 확대는 중진국이던 한국이 경쟁력을 키워 선진국으로 올라서게 하는 계기가 되었고, 중국, 베트남, 인도 등의 아시아 국가들 또한 경제력을 빠르게 향상시켜 세계경제의 한 축을 맡게 되었다. 경제학에서는 교역의 이익을 분업의 이익에서 찾는다. 분업의 본질은 상호보완성이다. 세계화 이전에는 국제적 분업을 말할 때 자본집약적 산업은 선진국, 노동집약적 산업은 후진국에서 하는 것으로 단순하게 이해했다. 그런데 최근의 글로벌 경제에서는 반도체 등 필수적 핵심산업에서 미국, 일본, 유럽, 한국, 대만, 중국 사이에 공급사슬의 상호보완적 수직분업이 이루어져 어느 한 쪽이 빠지면 다른 쪽에서 속수무책인 구조가 되었다. 그러므로 정치적으로 아무리 단절하고 싶어도 경제적으로 단절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최근의 국제 정세에서는 정치가 경제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북한의 위협은 어떤가. 한반도에서의 전쟁은 모든 걸 걸어야 하는 도박이라서 북한도 함부로 불을 붙이지는 못할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은 북한정권의 보장과 핵포기를 맞바꿔 북한을 평화의 길로 유도하자는 것이었는데, 어리석은 미국의 네오콘과 북한지도자가 대결의 길을 택해 무위가 되었다. 경제는 평화지향적이다.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에서는 정치경제적 조건 속에서 일어난 전쟁에 인간의 삶이 어쩔 수 없이 종속되었지만, 이 시대의 ‘전쟁과 경제’에서는 경제가 전쟁을 극복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채수찬 카이스트 교수

※본 칼럼은 <전민일보>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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