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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종교 이야기, 상대 의견 존중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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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종교 이야기, 상대 의견 존중해야
  • 전민일보
  • 승인 2024.01.15 09: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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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이다. 오는 4월 10일 제22대 총선을 앞두고 이러한 현상은 더욱 두드러진다. 신문이나 방송, 유튜브를 보면, 세간의 관심사는 온통 정치 얘기로 도배를 하고 있을 정도다. 한국인은 세계에서 가장 정치에 관심을 가지는 국민처럼 보인다. 한 여론조사에서도 국민 55%가 정치에 관심이 있지만, 4명 중 3명은 한국정치상황에 불만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듯 한국 사람은 정치에 민감하다. 우리는 일상 대화에서 정치 얘기로 논쟁을 벌이는 모습을 종종 본다. 그러다 정치 성향이 다르면 격한 감정을 표출하기도 하고 서로 원수지간으로 변하기도 한다.

우리가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먹고사는 문제에 있어 정치가 중요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정치는 인간이 태어나면서 원하든 원치 않든 직면하는 문제이다. 만약 정치 지도자를 잘못 선택하는 경우 그 영향이 직·간접적으로 자기에게 미친다. 문제는 정치토론을 하다 보면 상대를 인정하지 않고 자기 말만 옳은 양 우겨대는 사람도 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논거가 불리하면 삿대질을 해가며 고성을 지르기도 하고 급기야는 싸움으로까지 번져 자리를 박차기도 한다. 이는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 전부, 아니면 전무라는 사고방식 때문이다.

논쟁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대화를 할 때 상대방의 허점을 파고들며 상대방을 왜곡하는 것에 집착한다. 분노와 짜증의 대상이 되는 사람을 경멸하면서 쾌감을 느끼고 자기가 논쟁에서 상대를 압도하고 있다는 것과 자기가 도덕적으로 우월하다는 느낌도 받는다. 그리고 상대에 대한 자신의 시선이 왜곡되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다.

종교 얘기도 그렇다. 상대의 종교나 교리를 잘 인정하지 않는다. 자신이 믿는 종교만이 참 종교이며 진리라고 우긴다. 종교논쟁 또한 몇 날 며칠을 해도 끝이 없다. 언제든지 개신교가 문제다. 기독교 내에서도 파벌이 조성되어 성경해석을 달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필자와 가깝게 지내는 지인 몇 분과 모 커피숍에서 차를 마신 적이 있다. 차를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던 중 한 분이 불쑥 다음과 같은 말을 꺼냈다. 모 교회 여자 장로가 새벽기도를 마치고 집으로 가던 중 어느 집 탱자나무 밑에 애호박이 눈에 띄어 그 호박을 따서 가방에 넣어 집에 왔단다. 그리고 그 호박으로 된장국을 끓여 집안 식구가 맛있게 먹었다는 이야기다. 언뜻 들으면 별거 아니다. 호박 하나 땄다는 게 큰 죄를 지은 건 아니지 않는가. 물론 주인 몰래 남의 물건을 훔치는 건 절도이다. 그렇다고 호박 하나 땄다고 절도죄로 처벌받을 일도 아닐 것이다. 문제는 장로라는 분이 남의 것을 훔쳤다는 데 있다. 일반 사람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고 넘어가지만 교회장로는 신분이 다르지 않는가?

위 내용에서 보듯 믿는 사람이 잘못하면 부도덕한 사람으로 매도한다. 종교인들은 평생 나쁜 짓을 안 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믿지 않는 사람보다 교인들이 더 많은 죄를 짓고 산다고 말한다.

아무튼 대화를 하다 보면 정치 얘기보다 종교 얘기가 더 복잡해진다. 정치 얘기는 정답을 모을 수도 있는데 종교 얘기는 정답이 없다. 각자 믿는 종교마다 신앙관이 다르기 때문이다.

종교의 의미는 ‘초월적인 신’을 믿고 숭배하여 마음의 평안과 행복을 얻고자 하는 데 있다. 여기에는 내세관(來世觀)도 포함돼 있을 것이다. 다만 무신론자 입장에서는 내세가 없다고 하고, 믿는 사람들은 있다고 주장한다. 이 둘은 평행선이다. 서로 종교가 다르거나 신(神)의 유무를 놓고 상반된 주장을 펼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정치 얘기를 하든, 종교 얘기를 하든 상대의 의견을 존중해 주고 인정해 줘야 한다. 그래야 건전한 토론이 된다. 내 주장만 앞세우면 대화가 단절된다.

사람 사는 사회에서 대화가 없는 삶이란 없다. 가정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또는 여타 모임에서도 대화는 반드시 필요하다. 또한 세상에는 절대 지식도, 절대 진리도 없다. 물론 완벽한 제도도 없다. 더불어 사는 사회에서 내 주장을 펼치되 남의 의견도 존중해 주는 게 진정한 어울림이다.

신영규 전북수필과비평작가회의 회장

※본 칼럼은 <전민일보>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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