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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프 페텡과 홍범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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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프 페텡과 홍범도
  • 전민일보
  • 승인 2023.09.05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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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덩 전투는 역사상 최대 규모의 소모전이었다. 1차세계대전의 향방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 이 전투의 영웅이 필리프 페텡이다. 프랑스의 영웅이자 2차세계대전에서 프랑스를 전승국 지위에 올려놓고 전후 ‘위대한 프랑스’를 설계한 샤를 드골의 스승이기도 하다.

그런 페텡은 2차대전 종전 후 종신형을 선고받고 쓸쓸히 생을 마감한다. 문제는 그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간단치 않다는 것이다. 프랑수아 미테랑 전 대통령이나 현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그를 추념할 때마다 프랑스 사회가 몸살을 앓게 되는 근원이 해결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베르덩 전투에서 독일군 사상자는 무려 33만7천명에 이르렀다. 하지만 승리한 프랑스군 사상자는 그보다 더한 37만1천명이었다. 페텡이 히틀러에게 항복하고 비시 정부의 수반이 되고자 한 이유 중에는 1차대전에서의 참혹한 피해가 되풀이 되는 것에 대한 염려가 컸다고 한다.

페텡이 전범 재판정에서 남긴 유일한 말은 이렇다.

“나의 삶은 중요하지 않다. 내 삶은 이미 프랑스에 봉헌된 것이었다. 만약 여러분이 나를 단죄하려 한다면, 나를 그 단죄의 마지막이 되게 해달라. 그러나 나는 세계를 향해 말하려 한다. 여러분은 정의의 이름으로 죄없는 사람을 비난하고 있는 것이라고. 판결 후에는 하느님과 후손들의 심판이 올 것이다. 나는 프랑스를 믿는다”

페텡은 포로가 된 프랑스군을 처형하려는 독일에 맞서 자신을 먼저 죽이라 말하며 포로들의 생명을 구했다고 한다. 또한 2차대전 당시 프랑스인의 희생이 상대적으로 크지 않았던 것도 페텡의 빠른 항복 덕분(?)이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이에 대한 평가는 내 몫이 아니다.

홍범도 장군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봉오동과 청산리의 영웅 홍범도 장군은 왜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된 것일까? 분단된 한국 현실에서 공산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에 대한 평가가 자유롭지 못한 부분이 있지만 적어도 현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따로 있다. 박헌영의 첫째 부인이자 함께 독립운동을 한 주세죽은 공산주의 활동에도 불구하고 독립운동의 공을 인정받아 건국훈장 애국장에 서훈되었다. 박헌영이 일제치하 벌인 독립운동의 공이 주세죽만 못할 리 없다.

그럼에도 박헌영이 복권될 수 없는 것은 민족상쟁의 전범이기 때문이다.

봉오동 전투나 청산리 대첩의 전과(戰果)가 부풀려졌다는 것은 문제의 본질이 아니다.

홍범도가 레닌으로부터 권총을 받았다거나 그가 소련 체제의 일원이었다는 것도 핵심은 아니다. 레닌과 소련이 조선의 독립을 지원했다면 그것을 적절하게 관리하고 이용하는 것이 비난받을 이유는 없다. 문제가 되는 것은 따로 있다.

1921년 6월 28일, 러시아 자유시(알렉셰프스크)에서 독립운동 사상 최고 비극적 사건이 벌어진다. 조선의 독립을 지원하겠다는 러시아 측 제안에 따라 독립군들이 자유시에 모이게 된다. 이때 인근 수라셰프카에 주둔 중인 한인 부대인 사할린 의용대를 러시아 적군 제29연대와 한인보병자유대대가 무장해제 시키려 한다.

이 과정에서 불응하는 독립군을 향한 러시아 적군과 일부 독립군 세력으로부터 공격을 받아 많은 독립군이 희생된다. 이르쿠츠크파 고려공산당과 상해파 고려공산당의 파쟁이 불러 일으킨 자유시 참변이다. 홍범도를 두고 벌어지는 핵심적인 논란은 이때 홍범도의 행적에 관한 것이다.

홍범도가 의혹을 받는 데는 그가 참변 이후 포로로 잡힌 대한의용군독립군에 대한 군사재판에 재판위원으로 참여한 기록을 비롯한 몇 가지 의문에 기인한다. 물론 반론이 있다.

이하는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자유시 참변 연구 권위자인 윤상원 전북대 사학과 교수가 언급한 내용이다.

“홍 장군이 고려혁명군 중심의 독립군 통합에 찬성하고 참변 이후 벌어진 군사재판에 재판위원으로 참여했다는 이유로 자유시 참변에 가담했다는 왜곡된 주장이 나오는 것 같다. 홍 장군의 부대가 자유시 참변에 가담했다는 기록은 전혀 없고 오히려 참변 당시 홍 장군이 휘하 장교들과 인근 솔밭에 모여 땅을 치며 통곡했다는 증언만 있다”

폄훼는 물론 미화도 없는 홍범도의 모습이 무엇인지는 역사가 평가할 것이다.

장상록 칼럼리스트

※본 칼럼은 <전민일보>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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