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전기 문인이자 세종에서 성종대까지 대재학을 지낸 서거정은 김제를 지나면서 “청산이 끊어진 곳 땅도 따라 다하고, 백조 나는 물가엔 하늘이 다시 길구나(靑山斷處地應盡, 白鳥去邊天更長)”라고 노래했다.

산지가 없이 평평한 땅에, 흰 갈매기만이 강가에 놀고 나는 풍경을 읊고 있다. 이런 풍경을 바라보기 위해서 세워진 정자가 백구정(白鷗亭)이다.

우리나라 서해안은 밀물과 썰물의 차이가 커서 내륙 깊숙한 곳까지 조수의 영향을 받는 감조대(感潮帶)가 형성되어있다. 밀물 때는 수많은 물고기가 내륙으로 이동했다가 갑자기 썰물이 되면서 물고기가 미쳐 빠져나가지 못해 남게 되고, 이를 먹는 갈매기가 많이 모였다고 한다. 그곳이 바로 지금의 백구(白鷗)면으로 흰 갈매기에서 따온 지명이다.

백구면은 만경강을 사이에 두고 익산시와 접하고 있는 생태적으로 물이 많은 수변환경이다.

정부는 농업인력 감소나 기후변화와 같은 농업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농업과 첨단기술을 융합한 스마트팜 확산 정책을 추진중이다.

그 일환으로 스마트팜 청년농을 육성하고 미래농업 기술을 연구하며, 동시에 생산도하는 농업혁신의 거점으로 김제를 포함한 전국 4개 지역에 스마트팜 혁신밸리를 만들었다.

김제 스마트팜 혁신밸리에는 백구면 월봉리에 21ha 크리로 자리잡고 있다. 이곳에는 다른 스마트팜 혁신밸리와 다른 특별한 공간이 있다. 바로 한가운데 4,000㎡(약 1,200평) 크기의 논이 있다.

수변환경인 백구에는 예부터 물고사리와 독미나리가 많이 자랐다. 두 가지 모두 멸종위기 야생식물 2급으로 지정되어 있다.

백구면에 스마트팜 혁신밸리를 지으려는데, 아뿔싸, 하필 한가운데에 물고사리와 독미나리 자생지가 있는 것이다. 고민 끝에, 환경보호 차원에서 자생지를 그대로 두고, 그 주변으로 첨단 기술이 들어간 스마트팜 혁신밸리를 지은 것이다.

첨단과 환경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는 선택을 한 것이다. 참으로 잘한 일이다.

바야흐로 4차산업혁명시대이다. 인공지능, 빅데이터, 클라우드, 사물인터넷, 최근 들어서는 메타버스 등이 모든 사업을 아울러 가장 큰 화두이다. 농업도 예외가 아니다.

예전에 농업경쟁력을 따질 때는 시설과 장비가 중요했지만, 지금은 어떤 데이터를 쓰는 어느 플랫폼을 활용하는지만 알면 그 농장의 농업 경쟁력을 바로 알 수 있다. 다 데이터의 힘이다. 이 데이터를 농업에 활용하는 기술이 바로 스마트팜이다.

농업의 페러다임 전환에 따라, 작년 11월에 전국에서 처음으로 김제에 스마트팜 혁신밸리를 준공하여 본격적인 운영을 시작했다.

김제 스마트팜 혁신밸리의 핵심기능은 예비 청년농을 대상으로 스마트팜 교육, 임대형 스마트팜 지원 및 스마트팜 기술의 연구 실증 지원이다.

특히 혁신밸리 안에 있는 스마트팜 청년창업보육센터는 예비 청년 농업인을 대상으로 스마트팜을 통해 농업 농촌에 정착할 수 있도록 18개월 동안 최신의 이론과 실습 교육을 지원하고 있다.

졸업후에도 우수 교육생에게 3년 동안 임대형스마트팜에서 경영과 재배역량 향상의 기회를 제공하여 창업을 준비하는 시간을 갖도록 지원하고 있다.

농민의 경험에 의존하는 농사가 아닌, 작물생육상태와 기상 데이터, 토양 데이터 등을 기반으로 편하게 농사짓는 것이 스마트팜이다.

이러한 데이터에 근거한 기술을 농업에 적용한 것이 디지털농업이다.

농사짓는 사람이 줄고, 고령화된 현시대에는 디지털농업이 지속가능한 농업의 유일한 대안이다. 디지털농업이 튼튼한 농업, 활기찬 농촌, 잘 사는 농민을 만드는 길인 것이다.

환경과 첨단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김제 스마트팜 혁신밸리를 응원하고, 그곳에서 교육받고 있는 청년농들을 더 힘차게 응원한다.

성제훈 농촌진흥청 디지털농업추진단장

※본 칼럼은 <전민일보>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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