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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아리부터 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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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아리부터 깨라
  • 전민일보
  • 승인 2021.10.22 09: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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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이 심한 아이들이 대감집 뒤뜰에서 술래잡기하다가 한 아이가 항아리에 빠졌다. 어른 키만 한 항아리에 올라 숨을 곳을 찾다 그만 미끄러진 것이다. 물이 가득 찬 항아리 안에서 아이는 허우적거렸다. 어른들이 달려오더니 주변의 사다리와 밧줄을 집어 던졌으나 아이는 정신없이 허우적거리기만 했다.

그 순간 한 아이가 힘에 부치는 돌덩이를 들고 오더니 이내 항아리를 내리쳤다. 철옹성 같던 항아리는 순식간에 깨지고 물은 바닥으로 쏟아졌다. 어른들은 갑자기 벌어진 일에 어안이 벙벙한 사이 돌을 던진 아이는 항아리 속 아이를 일으켜 세우고는 등을 두드려 주었다.

『자치통감』의 저자 사마광(1019~1086)의 7세때 일화를 꾸민 파옹구우(破甕救友)의 일화다. 이는 이해타산에 얽힌 어른들의 사고를 한순간에 부숴버리는 순수한 정신의 교훈이다.

항아리는 대감집의 것이라 어른들은 항아리를 아이의 생명보다 더 중히 여겼다. 그러나 일곱살 꼬마는 좌고우면하지 않고 항아리를 깨는 인명 존중사상을 보여주었다.

염일방일(拈一放一)은 이를 바탕으로 한 고사성어다. 하나를 얻으려면 다른 하나를 버려야 한다는 상식적인 일을 실천하지 못해 평생 쌓아온 명성과 인격을 망치는 자에 대한 교훈이다. 발전을 위해서는 기존의 틀을 깨야 한다는 가르침인 것이다.

사마광의 행동은 보수적 가치를 탈피한 개혁적 인물의 가능성을 전제한다. 그런데 막상 사마광은 개혁을 주장하는 왕안석의 신법(新法)에 반대하여 보수주의 구법(舊法)의 대표 주자가 되었다. 그 숭고한 정신의 일화가 어른들이 각색한 싱거운 이야기로 보이는 이유다.

파옹(破甕)의 순수성으로 예견된 사마광의 정신은 인본주의의 큰 정치였다. 노회한 정치인의 철학을 어린이의 행동과 맞비교하는 것은 무리일 수도 있으나 인간의 가치는 상황에 따라 변할 수 있다는 아쉬운 예인 것이다.

정치인이 자신의 주장에 사변적 이론을 강화하면 정치는 혼란에 빠지고 당쟁은 격해진다. 개국과 쇄국으로 분열되어 조선이 망했듯이 송나라도 신법과 구법으로 혼란에 빠져들어 나라가 망했다.

21세기 한국인은 술래잡기나 하는 철부지가 아니다. 분명히 자신의 당론을 스스로 정할 만큼 성숙했다. 그런데 아직도 정치인들은 하나를 잡은 손으로 또 다른 것마저 잡으려 한다.

더구나 돈까지 마저 쥐려 한다. 그래서 국민은 자신의 이론을 강화하는 정치인처럼 발언권이 세졌다. 권력과 명예를 갖춘 존경받는 인물이 없는 까닭에 백성들은 정치를 혐오하며 등을 돌린다. 돈과 권력을 마저 잡으려는 욕심은 패가망신의 지름길이다.

우리에게는 아직도 거란과 서하와 같은 강대국들이 무리한 세폐를 강요하는 상황이다. 그런데도 정치는 아직도 항아리 속 아이를 걱정스럽게 지켜보고만 있다. 7세 신동의 순수한 마음으로 항아리를 깰 수 있는 이 시대의 사마광은 없는 것일까.

송나라가 망한 것은 문화를 숭상해서가 아니다. 기득권을 지키려는 정치인들의 국론분열적 이기주의가 패망의 원인이었다.

정치인은 물론 우리 모두가 잡으려[拈] 집착하기보다 버리고 비우는[放] 마음, 염일방일(拈一放一)의 정신을 살려낸다면 살만한 세상이 이루어져 큰 항아리에 빠진 아이도 안전할 것이다.

강기옥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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