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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먹는 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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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먹는 사과
  • 전민일보
  • 승인 2008.12.26 08: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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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식사 후 후식으로 감을 먹었다. 가을에 가져온 단감이 물러서 벌써 익은 감이 되어있다. 마치 땡감을 소금물에 담가 우려낸 감 맛이요 끓는 물에 삶아낸 감 맛이다. 그러나 먹는 것을 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니 그것도 감사하며 먹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입가심으로 잘 익은 홍시를 먹었다. 이것 역시 덜 익은 상태에서 따 왔는데 실내에서 홍시가 되어 가는가 싶더니 이내 가죽이 마르면서 볼품이 없어져간다. 그러기에 누구하고 나누어 먹을 형편도 안 되어 그냥 혼자만 먹고 있다. 내가 따 온 감이라서 그런지 씻지 않고 먹어도 안심이다. 시장에서 파는 물건에 비해 크기가 작고 폼은 안 나지만 그냥 먹을 만은 하다. 어쩌면 이렇게 마음 편하게 안심하고 먹는 음식이라면 피가 되고 살이 될 것만 같다.
어제는 5일장이었다. 노점에서 한 바구니에 3천 원 하는 사과를 사왔다. 올해처럼 모든 과일이 풍년이고 맛이 있는 때도 드물다고 하였다. 어느 가게에서 사거나 어떤 물건을 골라도 뛰어난 품질에 대 만족이었다는 생각이 들었고, 내가 소비자가 된 것을 감사하던 가을이었다. 오늘 아침에는 그 사과도 먹어야 했다. 넉넉하게 담아준 비닐봉지가 가격에 비해 부담스러워 보였다. 수북이 쌓여있는 사과를 이리저리 뒤적이지 말고 그냥 주는 대로 믿고 사라던 노점상 주인의 말도 떠올랐다. 그러나 비닐봉지를 여는 순간 잘 먹고 난 아침이 역겨워졌다. 길가다가 갑자기 뒤퉁수를 맞은 기분이 들었다. 처음부터 내가 알고 있었더라면 그나마 나았을텐데, 믿는 도끼에 발등이 찍힌 격이었다.
예로부터 감나무 꼭대기의 따기 어려운 감은 한두 개 남겨두는 것이 습관화되어 있는 우리다. 왜 그러냐고 물으면 까치도 겨울 양식을 하라고 남겨둔다고 하였었다. 그처럼 자연과 더불어 살아온 우리네 선조들이었다. 하지만 요즘의 까치는 우리를 배신하고 있다.
비록 내가 농약을 많이 주어 벌레가 없어졌다고 하더라도 눈치를 살펴가며 민가의 곡식을 먹는 것은 너무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전을 염려하여 전신주에 지은 집을 부쉈기로서니 전깃줄에 떼거지로 몰려 앉아 줄이 늘어지게 하는 것도 너무했다는 생각이 든다. 거기다가 먹으라는 까치밥 외에 상품용 감을 먹는 것도 너무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가게 주인을 믿었다. 다만 아무 것이나 맛있는 것을 골라먹은 까치가 얄미울 뿐이다. 한 바구니에 잘 익은 과일이 가득하다는 것은 고마운 일이었다. 잘 익은 과일일수록 곤충이 잘 알아본다는 말도 이해가 간다. 까치도 잘 익은 과일을 골라 먹을 수 있다는 것마저 이해를 한다. 그래도 그렇지 까치란 녀석은 먹다 만 과일이나 잘 먹을 것이지 눈에 띄는 과일마다 입맛을 다실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참으로 배운 것 없는 까치라는 생각이 들었다. 싼 가격에 한 바구니 가득 담아주는 주인의 정성이 무에 잘못이겠는가. 까치가 맛있는 사과를 골라 입맛 다셨다는 말을 그냥 믿고 또 믿는 것이 우리네 사람 사는 맛 아니랴 싶었다.
많이 주었다고 좋아하던 기분이 일시에 사라져버렸다. 그냥 먹을 수 있는 것은 전체의 절반에 지나지 않았다. 아침에 먹는 사과는 금이라던데 절반만 먹으면 최소한 은은 될 것이라 믿고 싶었다. 나는 그 가게 주인을 미워하지 않았다. 그것은 내가 그를 믿었다는 데에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오늘도 나는 이렇게 믿으며 먹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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