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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유공자 이상보씨 “원해서 한 일 후회는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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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유공자 이상보씨 “원해서 한 일 후회는 없어”
  • 정석현 기자
  • 승인 2021.05.17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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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대 의대 광주민주화운동진상규명 시위 주도

 

“원해서 한 일 후회는 없습니다”

5.18광주민주화운동으로 촉발한 전북대학교 의대생들의 진상규명 시위를 주도한 이상보(64)씨.

시간이 흐른 탓일까. 그는 담담한 표정으로 1980년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그해 6월24일 5.18이후 휴교 중이던 전국의 대학 가운데 전북대 의대가 가장 먼저 개강을 했다.

당시 전주시 경원동에 위치했던 전북대 의과대 운동장에는 계엄군이 막사를 치고 주둔 중이었고 정문에는 총을 든 계엄군 2명이 교대근무를 하며 지키고 서 있었다.

5.18소식을 전해들은 당시 본과 4학년 이상보씨는 며칠 전부터 시위를 계획, 학생들과 함께 시위 방법 등을 논의했다.

안은 농성, 가두시위, 동맹휴교 등 3가지였다.

계엄군이 지키고 있는 정문을 개별적으로 통과해 병원 인근에 모인 학생들은 팔달로 쪽으로 나아갔다.

거리 곳곳에 무장한 계엄군 앞에 선 학생들은 그저 침묵하며 걸을 뿐이었다. 위세에 눌린 것이다.

결국 학생들은 경원동 우체국 부근에서 멈추고 대책 마련, 전 의대생과 함께 미원탑 인근에서 기습시위를 준비했다.

하지만 그곳에는 이미 학교 측의 연락을 받은 가족들과 교수들이 모여 있었고 시위는 실패로 돌아갔다.

검거를 피해 서울로 올라간 이상보씨는 부모님의 설득으로 자수를 결정하게 된다.

그는 이후 전주보안대로 연행, 35사단 헌병대에서 수감생활을 하다 광주 상무대로 이송돼 100여일만에 형 집행정지로 풀려났다.

100여일만의 수감생활은 그가 평생 겪어보지 못한 고초의 시간이었다.

감옥에 거꾸로 매달리는 일은 부지기수였고 식사는 피죽이나 다 불어 터진 라면이 전부였다.

40여년이 흐른 지금 이상보씨는 5.18 민주화운동이 희미해지고 있는 것에 대해 시대적 변화에 따른 당연한 흐름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망각해서는 안 되는 일이지만 그렇다고 5.18에 과도하게 얽매이는 모습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그날의 치열한 투쟁으로 현재 이 만큼의 민주화를 이뤄낸 것으로 만족하면 될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의료계 등 당시 전문직 종사자를 제외한 5.18 희생자들은 이 사건으로 인생이 바뀌었다. 현장에 있던 희생자 대다수가 힘든 생활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어떻게든 이들에 대한 보상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석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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