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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인들 행복이 최우선...차별없는 소통에 앞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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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인들 행복이 최우선...차별없는 소통에 앞장"
  • 홍민희 기자
  • 승인 2021.02.19 02: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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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우리의 일상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비장애인 뿐만 아니라 장애인들의 일상도 달라졌는데, 그 중에서도 '농인'이라 불리는 청각장애인들에겐 코로나19가 가져다 준 작지만 소중한 변화가 있다. 바로 '수어'가 보편적 언어로 일상에 자리잡게 된 점이다.
뉴스 한 귀퉁이에서나 간접적으로 만날 수 있었던 수어는 이제 코로나19의 소식을 가장 발빠르게 전하는 제2의 언어가 됐다.
지난 3일엔 수어가 국어와 동등한 자격을 가진 언어로 인정받는 것을 기념하는 '한국 수어의 날'이 첫 제정된 날이어서 수어의 위상은 그 어느때보다 높아졌다.
그러나 수어의 위상이 높아졌다고 수어를 사용하는 농인들의 위상도 높아졌다고 말하기엔 아직 부족함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이런 가운데 은빛 머리칼을 휘날리며 40여년에 이르는 세월동안 전북에 수어와 13000명의 도내 농인들의 존재를 올바르게 전달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 최현숙 사)전북농아인협회전주시지회·전주시수어통역센터 실장이 그 주인공이다. /편집자주

"장애가 있는 동생이 부끄러웠어요. 그 부끄러워했던 마음을 갚기 위해 뛰어든 일이 40여년을 헤아리네요."

최현숙 실장의 집은 늘 조용했다.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여동생이 있어 집안은 우울과 적막감이 시시때때로 감돌았다.

지금도 그렇지만 반세기 전에 집안에 장애인이 있다는 것은 당사자에게도, 가족에게도 힘든 일일 수 밖에 없었다.

사춘기 시절, 친구들이 집에 놀러오려고 하면 최대한 미루고 미루다 결국 방문한 친구들에게 동생을 보여주기 싫어 동생을 작은 방에 가두는 일도 있었다.

그렇게 좁은 방에 오랜시간 갇혀 있어야 했던 동생이 파랗게 질린 모습은 최 실장이 영영 잊지 못하는 장면이 됐다.

동생과의 소통을 위해 익힌 표준수화를 본격적으로 사용하게 되는 계기가 생겼다. 1984년, 전국농어인체육대회가 열릴 당시 지인을 통해 통역을 부탁받았다.

37년 전만 해도 수어통역사라는 개념이 지금처럼 구체화되지도 않았을 때라 최 실장은 통역사 겸 직원으로 일을 거들었다.

그러면서 수어통역을 본격적으로 알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체육대회가 끝나고 수어를 배우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위한 교육을 만들었다.

전북에선 첫 시도였다. 토요일마다 버스를 타고 서울에 가서 정규 수어 교육을 받고 내려와 수강생들을 가르쳤다.

큰 돈을 버는 일도 아니었고, 누가 대단히 알아주는 일도 아니었지만 특유의 명랑함과 뚝심으로 교육을 진행했다. 원광보건대 사회복지과에서 수어를 가르치는 교수로도 자리를 잡았다.

전국 최초로 수어통역센터가 전북에 들어설 수 있었던 것도 최 실장의 역할이 컸다.

1997년 정식으로 인건비가 책정되는 수어통역센터가 전국 최초로 전주에 세워지면서 수어문화를 전북에 뿌리내리게 했다. 농인분들의 자녀들을 대상으로 하는 유치원이 세워질 때부터 폐원에 이를때까지 최 실장은 늘 함께였다.

적당한 시점엔 대학으로 돌아가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에 매진하려고 했단다. 그러나 인생의 굴곡은 피한다고 해서 피해지는 것이 아니었다. 2009년 당시 농아인 일자리 창출과 관련된 문제가 붉어지면서 최 실장은 학교로 돌아가려는 계획을 잠시 접고 문제를 해결하는데 주력했다. 그리고 모든 오해를 바로잡고 다시 전주시수어통역센터로 돌아왔다.

농인들은 여타 다른 장애인들에 비해 가장 비장애인과 비슷한 모습으로 사회생활을 영위하다보니 더더욱 수어통역사의 역할은 무궁무진할 수 밖에 없었다.

"그야말로 수어통역사는 농인들의 요람에서 무덤까지를 책임지는 존재에요. 술먹다 시비가 붙어 경찰서를 갈 때도 따라가야 하고, 농인 임산부가 출산할땐 출산방에도 들어가 의사가 전하는 호흡법을 산모와 함께 공유하기도 했죠. 울고 웃을 일이 많을 수 밖에 없는 일입니다."

그렇게 수십년을 농인들과 함께, 그리고 청인(청각장애가 없는 사람)들에게는 수어의 매력과 필요성을 알리려 노력해 온 최 실장은 최근 1년이 가장 뜻깊다고 했다.

우리 모두를 공포와 충격에 빠뜨린 코로나19가 역설적이게도 전 국민에게 수어의 존재를 각인시킨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그동안 많은 청인들이 농인에 대한 이해가 지나치게 부족했고, 농인들을 비하하고 수어를 조롱의 대상으로 여겨왔던 시간들을 보내왔는데 단 1년만에 수어가 정말 필요한 언어라는 인식이 전국민적으로 퍼진것을 보면 감개무량할 지경입니다."

최 실장에게 40년 가까이 수어통역사 일을 하면서 가장 뜻깊었던 일을 묻자 단번에 '한국 수어언어조례 제정'을 꼽았다.

국주영은 전북도의원과 손을 잡고 전국 최초로 수어 관련 조례 제정에 동참한 최 실장은 이 조례로 인해 각 지자체에서도 조례 제정을 이어져 더 많은 수어통역사들이 활동할 수 있는 터전을 넓히는 계기가 됐다며 국주영은 의원에 대한 고마움과 뿌듯한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편견'이라는 산을 더 넘어야 한다고 말하는 최 실장의 눈에 잠시 그늘이 스쳤다.

"수어에 대한 인식이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방송사에 전화해 수어통역사 화면이 거슬린다며 빼라는 민원인들도 많고, 수어가 유명해진것이지 수어의 제1사용자인 농인들의 현실과 처우에 대해선 아직 조명이 가지 않은 상황이어서 여전히 갈 길은 멀었다고 생각해요."

숱한 어려움과 편견에도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단 하나. 농인들 때문이라고.

"기자님, 농인들 만나보신 적 있으세요? 정말 너무너무 순수해요. 자기에게 수어로 다가와 주는 사람이 있으면 세상 모든 걸 다 주려고 할 정도에요. 이런 농인들이 보다 살기 좋은 세상이 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할것 같아요. 수어의 날이 생긴 것 보다, 수어를 사용하는 농인들의 삶이 더 주목받는 날이 올 수 있을까요?"

통역사로의 자신을 가루가 되어도 좋으니 농인들이 행복하게 사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말하는 최현숙 실장은 오늘도 옷을 가다듬고 브리핑 단상 위에 오를 것이다.

그리고 손 나래를 펼쳐 농인들에게 세상을 전할 것이다. 그녀의 손 동작이 향하는 곳에 희망도 함께 하길 바라본다.
홍민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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