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시란 상대가 좋아하는 것을 조건없이 주는 행위를 말한다. 내가 너를 위하여 준다고 생각조차 갖지 않고 그대로 주는 마음. 그것이 보시다. 구하는 마음없이 내 것을 남에게 준다는 것. 이 정신이야말로 화동(和同)을 이룩하는 근본이라 할 수 있다. ‘사촌이 논을 사도 배가 아픈’게 아니라 오히려 기뻐하고 축복해주는 그 이상의 정신이다.
부드럽고 온화한 말씨로 상대를 감화시키는 것이 애어요, 중생을 위하여 행하는 일체의 동작이 이행이다. ‘나의 출세를 위하여 남이야 죽든 말든 상관할 바가 아니다’가 아니라 오로지 남을 위하는 숭고한 마음이다. 동사란 한마디로 협력이다.
나 하나의 고집으로 일을 그르치기보다는 여럿을 위하여 나를 거기에 동화(同化)시키는 자세, 분열이 아니라 협동, 화합하는 행위를 뜻한다. 이른바 중상, 모략, 시기, 허위투서와는 정반대되는 정신세계인 것이다. 꼭 총칼에 의한 반목(反目)만이 동족상잔(同族相殘)을 빚는 것은 아니다. 음성적인 중상, 모략이 오히려 더 큰 불신과 분열을 조장한다. 더 나아가 간접살인으로까지 발전하는 무서운 악습이다. 어느 사회에서나 그러한 일면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유별나게 극심했다고 볼 수 있다. 골치 아픈 사회문제로 대두된 까닭도 그 때문이다.
이 같이 타기(唾棄)해야 할 행위에 대해 어떤 이는 자랑스럽지 못한 사색당쟁(四色黨爭)의 전통이라고도 한다. 심지어는 민족성의 결함이라고 까지 몰아 부치는 사람도 있다. 허나 그런 것이 아닐게다. 굳이 원인을 찾는다면 해방 이후 줄곧 정치적, 사회적 혼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방향 감각을 잃다시피한 사회구성원간의 ‘합의(合意)’에 장애를 초래한 데 있다고 보는 것이 옳지 않을까.
그러나 이제 조금은 안심해도 좋을 징조가 보이기 시작했다. 망국적 허위투서 진정등이 전북의 경우 42%나 격감됐다는 관계 당국의 통계다. 그 동안 애향 차원의 꾸준한 노력과 의식개혁 운동이 주요한 탓이라는 분석이다. 원인이야 어디에 있든 사회발전 과정의 획기적 전기라 할 수 있다. 한국 문화 국민답게 썩은 부위는 계속 청소를 해야 한다. 다시 한번 사섭(四攝)의 도를 음미 하면서…….
허 성 배 / 수필가
저작권자 © 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