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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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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작
  • 전민일보
  • 승인 2020.11.04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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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우리는 세종시로 이사를 했다. 8년을 휴직하며 세 아이를 기르던 며느리의 복직을 앞두고 걱정이었다. 세 살 터울로 9살, 6살, 3살의 어린 손주들이 있으니 이들을 돌보아줄 손길이 필요했다. 텃밭의 채소도 주인의 발자국소리를 들으며 자란다는데 부모의 보호가 중요한 시기가 아니던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우리가 갈께”하며 결정을 내린 것이다. 이것이 최선이었고 중요한 일이었으니 말이다.

'니가 왜 거기서 나와'의 노래 가사처럼 친구들은 묻는다. 왜 거기로 갔느냐고…. 전혀 경험하지 않은 충청도에 갑자기 둥지를 틀었으니 당연한 질문이었다.

쭉쭉 뻗은 고속도로를 달리다 험준한 협곡을 만나듯 낯설고 부담스럽기 그지 없는 일이다. 그래도 어쩌랴, 새로운 길, 한동안 더듬거리며 당분간 다녀야겠지만 이 고비만 잘 참고 넘기면 보람된 일이려니 싶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새로운 길을 갈망했었다.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30리 밖을 떠나본 적이 없었으니 대도시는 동경의 대상이었다. 비가 오고 기압이 낮은 날이면 멀리서 기적소리가 아련히 울려왔지만 볼 수도 없었으니 하얀 연기를 뿜으며 달려오는 기차의 모습도 보고 싶었다. 기회만 있으면 사람들이 많이 사는 대도시로 탈출하리라는 생각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향에서 공직을 시작한 나는 어렵사리 전주시로, 전라북도 도청으로 발을 뻗쳐가기 시작했다.

학연·지연·혈연이 뿌리 깊게 존재하던 시절, 등뒤에서 누군가가 조금만 거들어줘도 든든한 버팀목이 되던 때였다. 그만큼 직장 초년생들에겐 길을 안내해주는 선배의 충고가 절실하기도 했다. 그래도 나는 안다. 비록 배경은 없어도 열심히 일하면 인정받을 수 있다고, 남보다 조금 일찍 출근하고 조금 늦게 퇴근하면서 꼭 필요한 사람이 되리라는 각오를 하고 있었다. 직장도 사람 사는 세상이었고 노력하면 인정받을 수 있는 사회였다. 우여곡절을 거치며 도청에서 공직생활 34년을 마무리할 수 있었으니 나에겐 축복이었고 나는 인덕이 많은 사람이었다.

요즘 오후가 되면 바빠진다. 초등학교 2학년인 큰 손자가 돌아오고, 해질녘엔 유치원에서 두 아이가 들이 닥친다. 만나면 ‘할아버지’하며 달려드는 모습이 정겹다. 정적만 흐르던 우리 집엔 웃음꽃이 피고 윤기가 흐른다. 여섯살 손녀가 장난감놀이, 말타기를 하면 그 동생은 그 대로 따라서 행동한다. 눈높이에 맞는 남매가 있으니 말하는 것도 노는 모습도 일찍 터득하여 그만큼 지능개발에 도움을 받는다. 양보심도 생기고 질서의식이 일찍부터 싹트게 된다.

세종시는 2012년 광역자치단체로 출범했다. 정부청사가 세종으로 이전하면서 젊은 엘리트들이 몰려들었다. 이와 맞물려 아들네도 자연스럽게 옮겨온 것이다. 새로 계획된 도시라서 시가지도 깨끗하고 교통환경이 좋다. 아파트간 거리도 넓고 시가지조경이 잘되어 어디를 가나 휴식처요 공원이다. 자가용으로 10여 분이면 갈 수 있는 호수공원과 국립세종수목원이 있으니 해질녘이면 가족이나 정다운 이웃끼리 산책도 할 수 있는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진다. 우리나라의 중심에 위치하여 접근성도 좋아 인구유입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이제 종심(從心)의 나이다. 공자의 말처럼 '마음먹은 대로 행해도 도리에 어긋나지 않는 나이'다. 돌아보면 부끄럽고 어림없는 소리지만 노력하며 산다. 생각은 어릴 적 그대로인데 행동도 감각도 둔해지고 있으니 공평하게 주어지는 연륜에는 장사가 없는가보다.

이제 건강을 챙겨야 할 나이, 자녀들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짐이 되어서는 안된다. 새벽등산도 하고 글쓰기는 물론 서예 등 취미생활도 하며 그 영역을 넓혀나가고 있다. 나로 인해 존재하는 모든 가족들이 행복할 수 있다면 좋겠다.

좋은 글을 담아내기 위해서는 낯설게 살라고 한다. 사람들은 새로운 환경을 경험하기 위해 여행도 다니고 제주도에서 한 달간 살아보기도 한다. 새벽시장에도 나가 서민들이 열심히 사는 모습도 느끼려 한다. 하물며 세종시로 거처를 옮겼으니 이보다 더 큰 변화가 어디 있을까?

모든 것을 비우고 제일 중요한 일이 무엇이냐에 따라 행동했을 뿐이다. 손자들을 돌보며 이들을 통해 새로운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더없는 소득이 아닌가? 노후에 아들내외와 손자손녀들과 가까이 살면서 정을 나눌 수 있으니 이보다 더큰 행복이 어디 있겠는가?

어릴적 조부모님이 우리를 돌보며 기르셨던 기억이 아른거린다. 우리가 진 빚을 갚기도 전에 먼 길을 떠나셨다. 우리가 은혜를 갚을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주시지 않았다. 다만 “너희도 그렇게 하라!”는 무언의 교훈을 주신 셈이다.

둥지를 튼 곳은 새롬동, 새뜸마을이다. 새롭게 살아가라는 뜻이다.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새로운 꿈과 희망을 설계하리라. 서로의 필요를 채워주며 버팀목이 되어 줄 것이다.

이우철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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