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빌 일이 없을꼬? 하늘에 새는 새 대로 물속의 물고기는 물고기대로 땅 위를 걷는 사람은 사람대로 모든 생명이 다 저 생긴 대로 제 순리대로 살아가기를 바라노라면 하루 열두 번도 더 빌어도 모자라것다!”
아니, 그처럼 모든 생명의 길을 축원하신다면서 겨우 촛불 하나 켜 놓으신단 말씀이신가? 그래도 살다보면 한 가닥 희망을 찾기 위해서 바람에 위태로운 촛불 하나에 매달려만 했던 상황이 얼마나 많았던가!
촛불시위는 효순, 미순이 압살사건(2002)으로 우방 미국에 대한 불신에서 시작되었다. 이어 노무현 대통령 탄핵반대 집회(2004)에서 국회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졌다. 헌재가 서울이 수도인 것이 관습헌법(2004)이라 하며 신뢰를 깼다. 법원은 삼성특검(2008)으로 사법부 전체에 대한 신뢰를 깼다. 연애에서의 환멸의 법칙이 정치현장(2007)에서도 일어난 적이 있다. 당시 노무현 반대라면 굳이 사람까지도 필요 없고 개(X 묻은 개)든 닭(망령의 X닭)이든 당선될 수 있었다.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70% 대에서 20% 대로 곤두박질치는 상황이 되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집권한 후 인수위의 영어몰입, 강부자, 고소영 내각, 쇠고기 수입 등을 강요했다. 정권이 바뀌자 선과 악조차 밤새 변한다. 다만 미이라 문화장관이 임기제직책조차 코드인사를 강요하고, 청와대 만찬에서 학계나 종교지도자마저 아첨한다는 소식을 듣고 시저의 마지막 절규(絶叫) “부르터스, 너 마저”가 떠올랐을 뿐이다. 불신의 암흑시대에는 대통령, 국회, 법원, 학계, 언론, 종교 지도자, 그리고 심지어 그에 대항한다는 기존운동권세력조차 신뢰받지 못한다. 불신의 암흑시대에는 괴담이 ‘괴담’을 퍼트린다.
전환기의 일반법칙은 예측불허의 현상이 일상적으로 발생하는 것이다. 모든 것은 뻔하고 그저 그런 일상적인 일들뿐인데 진정으로 새로운 것은 무엇인가? 2008년 이번 촛불시위는 과거의 자유, 평등, 박애이념 때문이 아니고 내 밥상의 안전을 위한 새로운 생존생명권요구로 시작되었다. 현재 광우병이 에이즈처럼 퍼질 것이 무서워서 흑사병시대의 공포가 지배한다. 정부의 안전약속과 수입협상과정이 불신을 강화했다. 마치 프랑스 혁명에서 자유의 여신(외젠 들라크루아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이라도 되는 듯 촛불시위의 최초동력은 생존생명권을 요구하는 10대 소녀들이란다. 이 시위는 고교생이 주요 조직자이고 소통수단은 이동전화기이고 그들의 무기는 정직이다. 프랑스 혁명이 격세유전 되어 68세대가 등장하듯 80년대 386세대가 격세유전 되어 촛불세대가 등장했다. 소녀의 촛불기도에 맞서 정권은 말단경찰을 시켜 부재하는 배후를 찾는다는 전설의 고향 ‘괴담’이 떠돈다.
어둠을 밝히는 촛불은 무지를 밝히는 과학과 같으며 그 힘은 촛불을 든 이의 진정한 영성에 있다. 세상사 한치 앞을 모르니 거시적 법칙들이 주목된다. 현재는 오일 피크의 에너지 위기시대, 민주제 선거참여율 저하의 민주제 위기의 시대 등 문명사적 전환기이다. 한국의 경제발전과 정당 사이의 관계는 영국과 미국모델도 아니고, 독일모델도 아니고 일본모델에 가까워진다. 촛불이 꺼지지 않는다면 촛불 속에서 과학성과 영성이 타오를 것이다.
양승호 - 전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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