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 11월11일 밤 9시15분 익산시(당시 이리시) 이리역 구내에서는 한국화약㈜ 화물인 다이너마이트와 전기 뇌관 등 40t의 고성능 폭발물을 싣고 정차중이던 화차 1량이 폭발했다.
당시 13만명의 작은 도시인 이리 시민 대부분은 저녁식사를 마친 뒤 한국 대 이란의 월드컵축구 예선전을 보고 있었고, 창인동 삼남극장에서는 관객 700명 앞에서 작고한 코미디언 이주일씨의 사회로 하춘화 쇼(리사이틀)가 열리고 있었다. / 관련기사 11면.
상대 진영을 오가는 축구 공과 화려한 하춘화의 몸 짓에 시선을 빼앗기며 나름대로 짜릿한 시간을 보내고 있던 시민들은 누군가 스위치를 누르듯 15초 간격을 두고 울려 퍼진 세 차례의 굉음에 일순간 소름이 돋았다.
폭발로 전기가 끊긴 시가지는 순식간에 칠흑 같은 어둠에 잠기면서 폐허로 무너져 내렸고 거리는 시신과 부상자, 신음 소리로 가득했다.
한국화약 측이 안전교육도 받지 않은 경비원을 책임자로 승차시켜 발생한 이리역 폭발사고로 철도공무원 9명과 시민 등 59명이 사망하고 1천343명이 중.경상을 입었으며 35개 학교 교사(校舍)와 주택 7천866동이 순식간에 잿더미로 변했다.
익산시사(史)는 기관차 파편이 700m까지 날아가 집을 부쉈고 반경 8㎞ 내 유리창이 모두 깨졌다고 기록하고 있다.
가수 하춘화씨는 "사고현장과 불과 500m 떨어진 공연장이 폭삭 무너지면서 아수라장이 됐는데 이주일씨가 정신을 잃고 쓰러진 나를 업고 뛰었다"면서 "생명의 은인인 이주일씨가 사망하던 날 펑펑 울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377만원의 보상금을 받은 사망자의 유가족과 제대로 보상 및 치료를 받지 못한 중.경상자들은 지금도 폭발 공포 등으로 정신적 후유증과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
또 유신정권은 재벌의 돈벌이에 국민이 희생당한 이 폭발사고를 무장간첩의 소행으로 여론을 몰아가기도 했다.
이 참사 30주년을 맞아 희생자를 추모하는 행사가 지난 7일부터 익산시내에서 열렸다.
지역 각계 대표는 이리역폭발사고희생자추모사업회(대표 김삼룡)를 발족, 희생자와 부상자를 위로하기 위한 대대적인 추모행사를 벌였다.
행사 기간 창인동 아르케 소극장에서는 이 사고를 토대로 한 연극 이리가 공연됐고 사고 당시와 이후 익산의 변화된 모습을 담은 사진전도 이 극장과 익산역 등에서 동시에 전시됐다.
또 11일에는 익산역 광장에서 진혼제를 열고 익산의 미래를 다짐하는 브랜드 슬로건이 발표됐다.
이어 익산, 세상을 포옹하다는 주제로 하루 종일 추모공연이 펼쳐졌으며 익산시 명예시민이자 홍보대사로 위촉된 가수 하춘화씨와 시립합창단이 추모의 노래와 춤을 마련했고 사고 현장 시민들의 이야기를 영상에 담아 상영했다.
익산시도 호남고속철도(KTX)의 전북 정차역인 익산역과 주변을 포함한 역세권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대한주택공사의 용역을 토대로 익산역 환승 체계 및 주차장 확보, 역사(驛舍) 등 역세권 개발에 국비 등 800억 원을 투입해 재개발에 나설 계획이다.
평화동을 비롯한 역세권 주변을 도시주거 환경개선지구로 확정하고 평화와 창인지구의 9만㎡의 부지를 매입해 공동주택을 건설하는 한편 중앙 및 남부시장의 현대화사업도 조기에 마무리할 방침이다.
이한수 시장은 "치유할 수 없는, 깊은 상처로 남아있는 참사의 아픔을 딛고 일어서자"면서 "역세권 개발을 통해 사고 당시 폐허였던 익산역과 주변을 쾌적하고 살기 좋은 지역으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익산=고운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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