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가 사경(寫經)에 이용된 역사는 매우 길다. 중국의 경우 위진남북조시대 불교가 들어오면서부터 사경이 크게 성하였고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삼국시대에 불교가 전래된 이후 사경이 중요한 국가사업의 하나가 됐다. 현존하는 최고의 사경인 무구정광다라니경이 바로 우리의 그러한 사경문화를 대변하고 있다.
서예는 가장 효과적으로 명상을 유도할 수 있는 예술이다. 묵향에 묻힌 가운데 붓끝에 온 정신을 모으고 감동적인 명언을 쓰다보면 자연스럽게 명상의 세계에 진입하게 된다. 그런데 불경이든 성경이든 유가의 13경이든 노자 도덕경이든 경전의 글보다 더 감동적인 명언은 없다.
따라서 경전의 명언들을 붓으로 베껴 쓰면서 붓끝에 온 정신을 집중한 가운데 그 말씀의 의미를 마음으로 새기며 명상에 잠길 수 있다면 그 보다 더한 청정심(淸淨心)의 향유는 없다.
서예는 바로 이처럼 청정성과 해탈성과 자연성을 갖춘 예술이다. 서예가 가지고 있는 이러한 특성을 현대의 생활에 접목하면 현대생활의 스트레스로 인하여 피폐해진 인성을 순화하는 데에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서예를 심리치료에 이용하는 등 새로운 방향으로 발전시키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그런데 우리 서예계에는 이미 서예와 사경과의 관계를 꿰뚫어 보고 양자를 접목하여 청정도가 매우 높은 작품을 창작해온 작가들이 있다.
이에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는 불경, 성경(구약, 신약), 유가의 경서, 노자 도덕경 등 각 종 경서를 정성으로 베낀 작품을 수집, 금산사에서 전시함으로써 종교인은 물론 일반 대중에게 서예와 사경의 관계 및 그 의미와 가치를 알리고 서예가 가지고 있는 특수한 예술성인 청정성과 해탈성과 자연성을 작품을 통해 체험하게 하고자 한다.
이것이 ‘사경전-마음을 글씨에 담아(一拜一字)’를 기획한 취지이다. 11월 4일까지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 금산사 보제루에서 열리는 이 자리는 김경호, 김시운, 이근태, 이윤용, 장세훈, 정현숙, 조영선, 진영근, 최은철씨 등 9명이 참여하고 있다. 이종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