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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바람] 스위스에서의 김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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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바람] 스위스에서의 김정은
  • 전민일보
  • 승인 2016.03.23 11: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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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려진 바로 김정은은 1993년에서 2000년까지 스위스 등에서 유학했다고 한다. 그가 1984년생 이라하니 10대 대부분을 서구에서 보낸 것이다. 한 개인의 삶에서 결코 짧지도 미미하지도 않은 시간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국호와는 어울리지 않는 절대자의 아들인 이 왕자는 그 기간 스위스에서 무엇을 했던 것일까. 에멘탈 치즈와 농구를 좋아했다는 것과 우수하지 않은 성적 그리고 비사교성 등이 스위스에서 보여준 희미한 그의 모습이다.

조기 유학한 적잖은 한국 아이들이 모두 성공적인 생활을 하는 것은 아니듯 김정은에게도 조금 너그러운 시각이 가능할지 모른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개인의 기호와 학창시절 성적은 물론 내면적인 성향의 문제까지 그 어느 하나 비판의 대상이 될 영역은 아니다.

문제는 그가 한반도의 절반을 책임지고 있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그는 민족 전체의 운명을 도박판에 올려놨다.

히틀러와 화성(畵聖)으로 불리는 세잔은 인생에서 중요한 경험을 공유한다. 둘 모두 미술학교에 낙방한 것이다.

대기만성(大器晩成)이란 말이 무엇인지를 보여준 세잔을 설명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상당한 수준의 실력을 갖춘 히틀러가 미술학교에서 낙방한 것에 대한 해석과 상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허무한 얘기이긴 하지만 히틀러가 화가로서 성공적인 삶을 살았다면 역사는 달라졌을까라는 질문이 여전히 여운을 남기는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우리가 김정은의 스위스 시절을 관심 깊게 보고자 하는 것도 그와 무관치 않다.

잠시 김정은이 스위스에 오기 1년 전인 1992년 1월의 어느 날로 돌아가 보자.

당시 배낭여행 중이었던 나는 한 유스호스텔에 짐을 풀고 내 침대를 찾아갔다. 그런데 내 자리엔 다른 사람이 이미 와 있었다. 중국인이었다.

지금은 세계 도처에 중국인이 넘쳐나지만 당시엔 중국인을 거의 찾기 어려운 시절이었다. 그것이 인연이 돼 그와 얘길 나누게 됐다. 대륙에서 왔다는 그는 부부가 함께 스위스에서 유학중이라고 했다. 여행도 같이 왔다는 그의 부인과도 인사를 나눴다. 그런데 얘기 도중 그의 입에서 흥미로운 얘기가 나왔다.

자신의 기숙사 룸메이트가 북한학생이라는 것이었다. 호기심에 북한인들이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 물었다.

그의 답은 이랬다. “그들은 엄격한 통제(strict control)하에 있다.”극좌(極左)의 정점인 문화혁명(文化革命)을 경험한 중국인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그것은 또한 내가 반공교육이 아닌 제3자의 증언으로 접한 최초의 북한 소식이기도 했다.

그로부터 많은 시간이 지났다. 그 시간의 물리적 길이가 초래한 변화는 조선건국과 멸망의 간극 보다 더 클지 모른다.

북한도 변했다. 영원히 죽지 않을 것 같던 김일성은 물론 그의 아들 김정일도 죽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이은 김정은은 가혹한 숙청의 칼날로 절대권력을 공고히 했다.

북한 사회 내부적으로도 탈북자와 장마당 그리고 핵과 미사일까지 숨 가쁜 변화의 시간이었다.

그럼에도 북한의 모습은 그때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그것은 조선의 르네상스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 영·정조 시대가 가진 한계 보다 더 뚜렷하다. 김정은을 제외하고 그 누구도 스위스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본질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화이트헤드(Whitehead, Alfred North)는 [과학과 근대세계]에서 이렇게 얘기하고 있다.

“아시아의 사람들이 생각했던 신은 너무나 독단적이거나, 또는 비인격적인 것이었기 때문에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은 관념이 정신의 본능적인 습관에 별로 영향을 미치게 한 바가 없었다. 어떠한 사건도 비합리적인 전제군주의 명령 탓으로 돌려야 하거나, 또는 비인격적인 불가사의한 근원에서 나왔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화이트헤드의 견해에 의문이 없지 않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하나는 김정은이 북한에서 보여주고 있는 모습을 이 보다 더 적확(的確)하게 설명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장상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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