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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서의 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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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서의 실수
  • 전민일보
  • 승인 2016.03.18 09: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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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동안 내내 인후 시립도서관을 다녔다. 이사한 뒤에도 놀던 방죽에 익숙하여 40분 남짓 버스를 타고, 또 10여 분을 걸어서 그 도서관에 나갔다.

왕복 두 시간을 허비하는 노릇이다. 일주일에 한두 번 오가며 차창 밖을 바라보다 문득 떠오르는 글제도 있어 그냥 예전처럼 그곳에 다니고 있다.

엊그제는 한 나절 시간 밖에 여유가 없어, 집에서 가까운 서신도서관에 갔다.

내 또래는 좀처럼 보이지 않고, 취업시험 준비를 하는 젊은이들로 자리가 꽉 찼다. 3층 자유열람실 빈자리에 앉아 책을 읽었다. 얼마 뒤 어느 청년이 다가와 자기 자리라며 좌석표를 내보였다.

책상 앞쪽에 75번의 숫자가 적혀있었다. 나는 주섬주섬 책을 거두어 가방에 넣고 “좌석제인가 보군.”하며 자리를 양보했다.

주위 사람들이 ‘별 양반도 다 있네.’하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사무실에 들어가 처음 왔다며 좌석표 발급요령을 물었다. 계단 옆에 발급기가 있다며 요령을 알려주었다.

인후도서관에서 발급받은 도서관 회원증이 어느 시립 도서관에서나 통용되어 편리했다. 회원증을 발급기에 대고 좌석표를 끊어 정해진 좌석을 찾아갔다. 휴대폰 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고요하던 열람실 분위기가 순식간에 깨졌다. 모두 놀라고 경멸어린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엉겁결에 휴대폰을 들고 밖으로 뛰쳐나왔다.

미리 안전모드로 전환시켜 놓지 않은 게 잘못이었다. ‘스마트 폰을 좋은 조건으로 바꾸어 주겠다.’는 점원 아가씨의 전화였다. ‘안 바꿔요.’나는 큰소리로 못마땅하게 대꾸했다.

자리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더니, 뚱뚱한 여고생이 다가와 좌석표를 보여준다. 나와 번호가 같아 내 좌석표를 보여주었더니, 학생은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내 좌석은 5층 열람실인데, 여기는 4층이라고. ‘아이쿠, 또 실수를 했군.’ 주의력이 떨어져서 실수를 연발했다. 다음에는 시간이 더 걸려도 인후도서관에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곳에서는 천 원 한 장 내밀면 연구실의 칸막이 좌석을 사용할 수 있다.

아무 때나 지하식당에 가면 내가 좋아하는 떡라면을 저렴한 가격으로 먹을 수도 있다. 동전 세 개만 넣으면 입맛에 맞는 커피를 뽑아 마실 수도 있다.

정이 들어선지, 실수를 몇 번 해서인지 나는 오늘도 천관의 집을 찾는 김유신의 애마처럼 단골 인후도서관으로 향했다.

도서대출실에서 빌린 책을 돌려주고 서가를 둘러보았다. 이정옥이 쓴 『반만 버려도 행복하다』는 책을 대출받았다. 요양병원의 62 가지 풍경을 나누어 쓴 것이라 읽기 편할 것 같다. 신문 열람대에 가서 일간지 몇 개를 골라 제목만 훑어보았다. 인후도서관은 익숙하여 자유롭고 편안하다.

집에서 도보로 10여 분 거리에 있는 자그만 도서관을 발견하여 몇 차례 이용했다. 가끔 어린아이를 데려오는 아줌마들이 있어 신경이 쓰였다. 아이들이 시끄럽게 한다고 주의를 주고 싶었지만, 무슨 망신을 당할까봐 참느라고 힘들었다.

오늘도 큰 꿈을 가진 청소년들이 꽉 들어찬 도서관을 그리워하면서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도서관을 찾고 있다.

김현준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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