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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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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걸이
  • 전민일보
  • 승인 2015.12.21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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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개강한 것 같은데 벌써 종강이다. 다른 수업은 지난 주에 종강했는데 논리적인 글쓰기 수업 월요일 반은 오늘 종강하였다.

수강생 열두 명에 청강생 세명이 알콩달콩 모여 매주 논제를 정하여 토의와 토론을 한 후 글을 써서 제출하게 하였다. 매주 글을 써야하는 부담 때문에 학생들이 힘들어 했지만 나 역시 학생들이 쓴 글을 일일이 첨삭하느라 힘이 들었다.

학생들이 매주 글을 쓰느라 고생을 많이 하여 마지막 주는 책걸이를 하기로 했다.

강의실에 들렀더니 칠판에 누군가 “교수님, 한 학기 동안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라고 써놓았다. 그리고 책상에 여러 먹을거리를 차려놓고 기다렸다. 찰밥과 곤드레 나물, 갓 담은 배추김치와 통닭과 과자, 단감에 이르기까지 푸지게 준비하였다.

케이크에 불을 붙이고 종강을 축하하는 노래를 부른 후 학생들과 함께 촛불을 껐다.

문학 동아리에서 활동하다 지난 한 학기 휴학했던 일흔 넷 먹은 기정애 학생도 자리를 함께 했다. 미국에서 교수로 있는 딸이 몇 달 동안 있어달라고 도움을 청해 미국에 갔다가 돌아온 것이다.

책거리는 서당에서 책 한 권을 다 읽고 떼었을 때 행하던 의례로 스승에게 감사하고 친구들과 함께 자축하는 것이다. 책례라고도 부른다. 이 때 준비하는 축하 음식으로는 국수장국, 송편, 경단이 있다. 특히 송편은 깨나 팥·콩으로 만든 소를 꽉 채운 떡인데 학문도 그렇게 꽉 채우라는 바람을 담았다.

책례는 학동으로 하여금 학업성취를 독려하는 의미도 있지만 선생님 노고에 답례하는 뜻도 담고 있다.

공자는 자신과 제자들 관계를 ‘師友’라고 하였다. 나이를 많이 먹고 학교에 온 만학도든 젊은 학생이든 나름대로 배울 것이 있는 스승이고 세대를 초월하여 친구 같은 존재이다.

대다수 학생이 비록 비중은 다르지만 나름대로 아픔을 떠안고 학교생활을 하고 있다. 그러나 겉으로는 아프다는 내색을 하지 않고 의연하게 살고들 있다. 작고 사소한 일에도 불평을 앞세우고 호들갑을 떨었던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한 학기 동안 고생했다는 위로와 함께 방학 때 실시하는 글쓰기 특강수업에 참석하여 공부를 더하라고 권하였다.

모든 학문이 그렇듯이 글쓰기를 하루아침에 잘 할 수 없다. 재채기가 나올 듯 말 듯 하다 멈춰버린 유쾌하지 않은 경험을 한 사람이라면 어정쩡한 경계가 주는 기분이 얼마나 칙칙한지 잘 알 것이다. 공부도 알 듯 모를 듯 할 때가 가장 위험하다. 한 학기 수강한 것으로 글쓰기를 완성했다는 것은 자만이자 교만이다.

책걸이는 종강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시작하는 출발점이다.

교수는 한 학기 동안 학생을 가르치면서 부족하고 미흡했던 것이 없었는지 점검해야 한다. 이 시간을 통해 다음 학기 때 더 좋은 수업을 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 학생은 학점 받은 것으로 끝내지 말고 부족하고 이해하지 못한 것을 완전하게 알 수 있도록 되짚어보아야 한다.

글쓰기는 단순히 작문능력을 기르는 데 머물러서는 안 된다. 글쓰기는 언어활동 가운데 한 활동이자 소통하는 능력이다. 그리고 어느 현장에서든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다. 책걸이를 하면서 내 수업을 수강한 학생들이 이러한 능력을 길러 사회에서 유능한 지도자가 되기를 갈망한다.

최재선 한일장신대 인문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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