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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 빛바랜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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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 빛바랜 승리
  • 전민일보
  • 승인 2015.10.23 10:1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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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에 대한 일본의 도발은 진행형이다. 불행한 것은 그것이 미래에도 계속될 것이란 점이다. 일본에게 주권을 침탈당한 역사적 경험은 독도에 대한 실효적 지배에도 불구하고 분노와 불안감을 동시에 안겨주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적잖은 사람이 이렇게 얘기한다.

‘왜 정부는 일본에게 저자세인가. 좀 더 강하게 일본에게 대응해라.’

국민감정으로만 얘기한다면 이승만 대통령의 초강경 대응 이상 한국인에게 통쾌함을 안기긴 어려울 것이다. 독도를 포함한 해양주권선언인 평화선선포와 함께 이승만은 한 발 더 나갔다.

일본을 향해 대마도를 한국에 반환하라며 공세를 펼친 것이다. 이에 놀란 요시다 시게루(吉田茂) 수상이 맥아더를 찾아가 ‘아무리 패전국이라지만 너무한다.’며 하소연했다는 얘기는 유명하다.

그런데 대마도에 대한 연고권과 관련한 한국인의 역사적 인식은 이승만에 국한하지 않는다.

세종(世宗) 1년인 1419년 6월에 단행된 대마도 원정에 앞서 상왕(上王)이었던 태종(太宗)은 교유문(敎諭文)을 발표한다. 그런데 거기에서 태종 역시 대마도를 우리나라 땅으로 얘기하고 있다.

“대마도는 본래 우리나라 땅인데, 다만 궁벽하게 막혀 있고, 또 좁고 누추하므로, 왜놈이 거류하게 두었더니, 개같이 도적질하고, 쥐같이 훔치는 버릇을 가지고 경인년으로부터 변경에 뛰놀기 시작하여 마음대로 군민을 살해하고, 부형을 잡아 가고 그 집에 불을 질러서, 고아와 과부가 바다를 바라보고 우는 일이 해마다 없는 때가 없으니, 뜻 있는 선비와 착한 사람들이 팔뚝을 걷어 부치고 탄식하며, 그 고기를 씹고 그 가죽위에서 자기를 생각함이 여러 해이다.”

태종의 말속엔 한국역사에서 흔치 않은 원정(遠征)에 대한 정당성이 담겨 있다.

이종무(李從茂)가 지휘한 조선군은 227척의 배에 1만 7천여 명의 병사를 태우고 거제도 남쪽에 있는 주원방포(周原防浦)에서 대마도 원정길에 오른다.

시작은 순탄했다. 원정군이 대마도 두지포에 상륙한 1429년 6월 20일, 해안에는 많은 대마도 주민들이 운집해 있었다. 그들은 수평선 너머로 보이기 시작하는 배들을 보며 중국으로 약탈을 나섰던 자신들의 함대가 귀환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얼마 후 사태를 파악한 그들은 혼비백산해 산으로 달아난다.

훈내곶의 지협을 점령한 조선군은 대마도를 남북으로 분리하고 해변을 따라 마을과 항구를 초토화 시켰다. 이제 대마도주에겐 항복 외에 선택의 여지가 없어 보였다.

그런데 이때 조선군 지휘부는 고민에 빠진다. 전략거점을 파괴하는 성과는 거뒀지만 대마도에 있는 병력을 궤멸시키진 못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귀국 후 상황을 염려하게 된다.

“대군이 출동했는데 전투다운 전투 한 번 없이 회군 했다는 비난을 받으면 어떡하지”

이후 전개된 상황은 빛나는 성과를 바래게 만든다. 적을 찾아 험준한 대마도 산속으로 진입한 것이다. 세계 최강을 자랑하던 미군이 베트남 정글에서 고전했던 것처럼 조선군은 낯선 지형과 매복에 많은 희생자를 내고 후퇴하게 된다. 이후 전개된 전투에서도 회의에 대부분의 시간을 소모함으로써 효과적인 전술수립에 실패한다. 제비뽑기로 전투부대를 결정할 정도였다.

그런 상황 속에서 제대로 된 승리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였다. 결국 조선군은 패배한다.

사기가 저하된 조선군은 대마도 고사작전 마저 포기하고 귀국길에 오른다.

단 한 번의 실수로 대마도 원정의 취지가 무색해져 버린 것이다.

“병력을 기울여서 무력을 행하는 것은 과연 성현이 경계한 것이요, 죄 있는 이를 다스리고 군사를 일으키는 것은 제왕으로서 부득이한 일” 이라며 원정의 정당성을 갈파한 태종(太宗)의 말처럼 그것은 침략이 아닌 자위권 차원의 원정이었다. 정당한 전쟁은 존재하지 않지만 필요한 전쟁은 불가피하다. 대마도 원정은 필요한 전쟁이었다.

역사적으로 한국은 평화애호국이다. 미래에도 그럴 것이다. 그럼에도 수많은 전쟁의 기억이 남아있다. 미래에 또다시 전쟁을 피할 수 없다면 승리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빛바랜 것이 돼선 안 된다.

빛바랜 승리에 남는 건 허울뿐이다.

장상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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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op 2015-10-23 11:59:05
1948 년 6 월 8 일
유엔군 인 재일 미군은 독도를 폭격.
이는 일본 정부의 허가를 얻은 것이다.
유엔도 일본의 영토로 인식하고 있던 증거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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