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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바람] 고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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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바람] 고명
  • 전민일보
  • 승인 2015.09.14 10: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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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선 한일장신대 인문학부 교수

 
친구가 냉면을 맛있게 하는 집이라며 식당을 아예 정하여 만나자고 했다. 원래 냉면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아주 맛있게 한다는 말에 혹했고 모처럼 식당까지 정하여 연락한 성의를 외면할 수 없어 댓글을 달지 못했다. 약속한 시간에 맞춰 식당에 도착했다. 주차장이 비어 있는 곳이 없어 인근 골목에 주차를 겨우 하고 식당으로 갔다. 먼저 온 친구가 번호표를 받고 기다리고 있었다. 20여분을 기다린 끝에 물냉면을 먹었다. 면 위에 얹힌 수육과 오이, 당근, 계란에 참깨가 합체하고 있어 먹음직스럽게 보였다. 친구 말에 따르면 이 집 냉면은 다른 집과 달리 고명이 맛있다고 귀띔해줬다.

내가 보기에는 그 수육이 그 수육이고 그 채소가 그 채소이고 그 계란 역시 일반 것과 별차이가 없는 것처럼 보여 친구말을 건성으로 흘러버렸다. 냉면 맛을 감상하며 먹을 줄 아는 능력이 부재한 상황에서 고명맛을 여러 번 예찬하는 친구 말이 실없이 들렸다. 면에 얹힌 수육, 오이, 당근은 고명이고 볶은 참깨는 양념이다. 고명과 양념은 모두 냉면을 맛있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이다.

고명은 시각적 효과에 중점을 두고 양념은 음식에 미각을 가미하여 음식 맛을 좋게 한다. 예로부터 음양오행설(陰陽五行說)과 관련된 흰색·노란색·파란색·빨간색·검정색을 이용했다. 오색을 모두 갖추는 것이 좋으나 때로는 한두 가지만 쓰기도 했다.

고명은 맛을 직접 내기보다 시각을 통해 미각을 유혹하는 역할을 한다. 글쓰기로 말하면 관심 끌기에 해당한다. 이에 반해 양념은 음식 맛을 내는 역할을 한다.

글쓰기로 말하면 독자에게 감동과 공감을 우려내는 역할을 한다. 고명과 양념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뤄야 어떤 음식이든 먹음직스럽고 맛이 있다. 고명에 지나치게 치우치면 내용이 부실해져 본질을 잃고 양념에 너무 기울어지면 본성을 잃고 느끼하여 곧 질리게 된다. 우리 삶 역시 마찬가지다. 고명만 중요하게 여기는 삶은 외향적인 것만 추구하는 삶이고, 양념만 중요하게 여기는 삶은 내면만 꾀하는 삶이다.

물냉면에 고명이 없다면 모래사막과 같아 무미건조할 것이다. 양념을 하지 않은 물냉면을 먹는 것은 그냥 맹물을 먹는 것과 진배없다. 우리나라는 ‘성형 공화국’이라 할 정도로 외모지상주의에 빠져 미용성형을 선호하는 사람이 많다.

화장품 소비율 역시 소득 대비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 성인 독서량은 월 평균 0.8권이다. 일 년 동안 책을 한 권도 읽지 않는 사람이 30%에 이른다. 이것은 고명만 수북이 넣고 양념을 하지 않은 맹탕 물냉면과 같다. 이런 물냉면은 맛이 있을 리 없고 먹으려고 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대학이 학문을 하기 위한 곳이 아니라 취업 전초지로 변질된 지 오래이다. 그래서 대다수 학생이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취업과 관련된 자격증을 취득하려고 제 2의 사교육을 받고 있다. 게다가 정부가 대학평가를 취업률을 많이 따지다보니 대학교육이 인성이나 지성을 기르기보다 도구적 인간을 만드는 데 목을 매달고 있다.

전인교육은 신체적 성장, 지적 성장, 정서적 발달, 사회성발달을 조화롭게 하여 넓은 교양과 건전한 인격을 갖춘 인간을 기르는 것이다.

고명과 양념이 서로 조화를 이뤄야 냉면 맛이 살아난다. 지 · 덕 · 체를 온전하게 갖춘 전인적인 인간을 길러야 우리 사회가 살 맛 나고 건강해질 것이다. 두 다리가 온전하게 균형을 이뤄야 넘어지지 않고 잘 걸을 수 있다.

외면을 가꾸는 데 부지런을 피운 것처럼 내면을 성장시키는 데도 게으름을 부리면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인격의 절뚝발이가 되어 이 세상을 뒤뚱거리며 살 수 밖에 없다.

친구가 점심 메뉴로 냉면을 택한 것이 단순히 무더위 때문이 아닌 것 같다. 친구가 냉면을 통해 전해주는 충고를 육수한 모금 남기지 않고 시원하게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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