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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바람] 가족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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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바람] 가족 사진
  • 전민일보
  • 승인 2015.05.06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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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수 수필가

 
며칠째 딸아이가 분주하다. 손자 돌이 가까워지는 모양이다. 한번 뿐인 아이 첫 생일이니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두자 싶어 통 관여를 안 하던 참이다.

어제는 아내가 물었다. 작은 애가 손자 돌에 맞춰 다 같이 모여 가족사진이라도 찍겠느냐고 물어 왔다는 것이다. 아직 낯가림도 못 뗀 아이에게 많은 사람들과 사진을 계속 찍는 일이 힘겨울 것 같아 그만 되었다고 했다. 어차피 돌잔치 날 다같이 모여 단체 사진을 찍게 될테니, 이번에는 너희끼리 예쁜 옷이라도 나란히 맞춰 입고 단란하게 찍으라고 양보하고 나니 내심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요 녀석이 가장 예쁜 시절에 함께 추억을 남기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조금이라도 손자에게 불편함을 준다면 얼마든지 포기할 수 있는 것, 바로 할아버지의 마음을 배워가고 있는 것이다.

한 때는 가족사진에 큰 의미를 부여한 적도 있었다. 언젠가부터는 싫다는 두 딸과 실랑이를 해가며 가족사진을 찍기도 했다. 사춘기 딸들의 얼굴에는 불만이 가득했고, 실컷 찍은 사진을 거실에 거는 일 조차도 가족들의 거센 반대에 쉽지 않았다. 왜 화목한 가족의 모습을 찍어 두고두고 보는 일에 내 가족들은 이렇게 인색한 것일까, 내가 가족을 사랑하는 방법은 왜 이렇게 쉽지 않은 것일까.

한참의 반목에도 나의 외로운 싸움은 결국 포기로 끝날 수밖에 없었던 적도 있었다. 그러고 보면, 나는 부모님과 함께 가족사진을 찍은 적이 없다. 결혼식에서 으레 행하는 형식적인 가족 촬영은 해 보았지만, 가족이 나란히 사진관에 나들이 하여 사이좋은 자세를 한껏 취해 본 일은 없는 것이다.

내 아버지는 인자하고 자상한 분이셨지만 그것을 밖에 내 보이기를 싫어하셨다. 늘 보는 가족을 굳이 사진으로 찍어 방에 걸어 놓는 일을 부끄럽게 여기셨다.

그런 아버지와 함께 사진관에 간 일이 있다. 대학을 졸업하고 막 임용이 되었을 때의 일이다. 자식이 이제 사회인이 된다니 뿌듯하신 걸일까. 내가 사진 찍는 모습이 보고 싶으신 것일까. 사진관에 도착하여 사진을 찍으면서도 괜히 쑥스러웠다. 이제 나도 어엿한 이십대 중반이다 되어 가는데 참 아버지도 부끄럽게, 이 나이에 누가 부모님과 함께 와서 사진을 찍는다는 말인가.

사진을 찍는 동안 한참 사진관을 둘러보시던 아버지께서는 내 촬영이 끝나자 말씀하셨다. 나도 한 장 찍읍시다. 사진사와 뭐라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신 아버지는 엄숙한 자세로 사진을 찍으셨다. 사진사는 나에게 하던 것과 달리 웃음을 요구하지 않았다.

“아버지, 어쩐 일로 사진을 다 찍으세요?”
“영정사진 찍었다.”
“네? 아직 정정하신데 웬 영정사진이요?”
“너도 이제 다 자라 사회에 나가는데, 나도 슬슬 준비해야 되지 않겠니.”

나는 더 묻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편찮으시지도 않으면서 영정사진이라니, 우리 아버지 참 주책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나이가 들면 엄살이 심해진다는데 아버지도 늙어가시나 했다. 십여 년 뒤, 아버지가 암 투병을 하게 되고, 병원으로부터 가실 준비를 하라는 말을 듣게 되었을 때였다. 모두가 망연자실하여 앉아 있는데 아버지가 날 부르셨다.

“애비야, 그 때 너와 함께 사진관에 가서 찍어둔 영정사진 있지 않니. 그거 저쪽 첫 번째 서랍이 넣어두었다.”

무뚝뚝했지만 가족을 정말 사랑했던 아버지. 가시는 길에도 남아 있을 가족 생각에 미리 준비를 마치셨던 아버지. 나는 왜 그날 아버지께 사진 한 장 같이 찍자고 말하지 않았을까, 뒤늦게 눈물이 났다. 십년도 넘게 잊고 있었던 그날 일이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 아버지도 어쩌면 나와 함께 사진 한 장 찍고 싶으셨을지 모른다. 나와 아버지의 인생에서 함께 다정한 사진 한 장 남길 기회는 어쩌면 그날 딱 하루였을지 모르는데, 나는 그저 무심히 넘기고 기억도 못한 채 살아왔다는 것에 눈물이 나 살갗이 아렸다.

예순도 중반을 넘어가는 지금, 이제야 아버지의 마음을 조금 이해할 것 같다. 언제나 자식을 위하고 걱정하는 마음으로 가득한 아버지의 마음을 말이다.

오늘은 그 아련한 마음이 떠올라 오랜만에 아버지의 영정사진을 꺼내 우리 가족사진 옆에 걸었다. 철없는 아들이 먼저 같이 사진찍자는 말도 못 건넸지만, 그래서 함께 찍은 가족사진 한 장 없지만, 마음만은 작은 아들 가족과 함께 살아가시라고. 먼 곳에서라도 증손자 커가는 뿌듯한 모습 보시며 행복하시라는 마음을 담아 가까이에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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