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시대 광복을 위해 몸을 바친 애국지사의 넋을 추모하기 위해 김제시 성산공원에 세워진 충혼비에 버젓이 일제의 유물이 설치된 채 45년 가까이 방치돼 있어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10일 본보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1960년 3월 김제지역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희생정신을 되새기기 위해 세워져 국가보훈처로부터 현충시설로 지정받은 김제시 성산근린공원 충혼비 앞에 일제 탄압의 대표적인 상징물인 신사의 유구 수세발(手洗鉢)이 설치돼 있다.
충혼비 앞에 신사참배 의식에 필요한 수세발을 설치해 충혼비를 신사로 만들어 버린 꼴이다.
수세발은 신사에서 참배에 앞서 손을 씻었던 대향 바위 용기로 앞면에 주로 세심(洗心)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으며 국내 각지 신사터에서 자주 발견되는 대표적인 신사의 유구이다. 서울 남산원 노기신사터와 마산신사터, 천안신사터 등에서 김제 충혼탑 앞의 설치된 수세발과 똑같이 세심이라고 새겨진 수세발이 확인됐다.
김제시 충혼비 앞의 수세발은 세심이라는 글자 사이에 태극문양이 새겨져 있으나 이는 충혼비를 세우는 과정에서 누군가가 원래의 수세발에 고의적으로 태극문양을 만들어 넣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1941년 일제에 의해 발간된 ‘대륙신사대관’에 따르면 김제신사는 1924년 3월 10일 창립돼 1926년 3월 20일 착공해 같은 해 6월 20일 완공됐으며 당시 신사창립비 내역에 ‘수세발 500원’이 포함돼 수세발의 존재를 확인시켜주고 있다.
신사가 일제의 조선에 대한 정신문화적 내선일체를 도모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됐던 시설이라는 점에서 신사의 유구 수세발을 설치해놓은 것은 충혼비의 취지는 물론 순국선열들의 희생정신을 욕되게 하게 행위라는 비난의 목소리가 높다 .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 블로그 ‘역사를 찾아’ 2008년 10월 15일자에 소개된 김제신사 관련 기사를 보면 필자인 아이디 ‘태허’가 직접 김제신사를 방문해 이 같은 사실을 확인하고 이해 할 수 없다는 소감을 피력했다.
일제 신사에 대해 연구하고 관련 유물전시회까지 개최한 군산 동국사 주지 종걸 스님도 김제 성산의 신사 유구 수세발의 존재를 확인하며 “충혼비 앞에 일제 신사의 주요한 유구인 수세발이 설치된 것은 역사와 순국선열등을 욕되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제시 관계자는 “지금까지 충혼탑의 수세발에 대해 아무도 문제를 제기한 적이 없다”며 “사실 여부를 규명해 사실로 확인될 경우 즉시 철거토록 하겠다”고 말했다.
김제=신성용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