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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부주의맹과 D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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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부주의맹과 DK
  • 전민일보
  • 승인 2013.07.31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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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당혹스런 경우가 있다. 축하 문자를 보내왔는데 그 번호의 주인공이 누군지 알 수 없을 때나 길에서 나에게 반갑게 인사하는 사람을 기억할 수 없을 때가 그렇다.

물론, 상황은 바뀌기도 한다. 같은 시간과 장소에서 동일한 사건을 경험한 타인의 기억이 상이한 것도 마찬가지다. 같은 것을 보고 들을지라도 그 정보에 대한 개인의 정보처리는 각각 다른 것이다. 추억까지도. 섣부른 일반화일지 모르지만, 대부분 인간은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

이와 관련해 유명한 고릴라 실험이 있다. 흰색과 검은색 유니폼을 입은 사람을 동수로 나눠 농구공을 주고받게 한다. 그리고 실험 참가자에게 그 영상을 보여주고어느 한 쪽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이 주고받은 공의 횟수를 세라고 한다. 그런데, 그 영상 중간에는 고릴라 탈을 쓴 사람이 나와 한 참 손짓을 하는 장면이 포함되어 있다.
영상을 다 보여준 후 실험 참가자에게 묻는다. ‘중간에 뭐 이상한 것 못 봤나요?’ 놀랍게도 절반 가까이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고 답 한다. 고릴라는 분명 나왔는데 왜 보지 못한 것일까. 인간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부주의맹(Inattensional blindness)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이것에 주목해야하는 이유는 우리가 놓치는 부분이 실제로는 기억하는 것보다 훨씬 본질적이고 중요한 사안일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불필요한 것에 너무 많은 관심을 소모한다는 것이다. 봐야할 것을 못 보게 만드는 것이 부주의맹이라면, 볼 필요가 없고 봐서는 안 될 사안을 보게 만드는 것은 뭐라 얘기해야 할까. 분명한 사실은 둘 다 인간 삶을 왜곡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의도하지 않았지만 놓치는 것에 대한 대응과 의식적으로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은 일맥상통한다. 진정 봐야 할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이기에 대의제(代議制)에서‘참여의 위기’를 얘기한다.

국민의 대표를 통해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대의제에서 국민의 참여가 저조하게 될 때 나타날 수 있는 문제이다.
그리고 거기에 맞물려 이른바 DK(Don’t know)층의 문제가 나온다. 하지만, 정치적 무관심층을 지칭할 때 사용하기도 하는 DK층은 양면을 가지고 있다. 역설적이지만 적절한 무관심은 대의제가 성공하는데 필요하다. 국민 모두가 모든 정치 사안에 대해 관여하려 한다면 그것은 또 다른 의미에서‘참여의 위기’를 초래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가 알 필요가 없고 알아서는 안 될 사안에 대한 DK층의 역할이다. 이들의 무관심은 부주의맹을 극복하는 대안과 꼭 같은 의미를 가진다. 조심스러운 것은 이것이 국민의 정치적 무관심을 조장하거나 정당화시켜 주는 논리로 비춰지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그렇지 않다. 부주의맹은 우리가 읽는 글에서도 나타날 수 있다.

이제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와 보자.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에 관심을 가지지 말아야 하는가. 자동차를 운전하는 사람은 비록 핸즈프리 상태로 통화를 할지라도 부주의맹 상태에 빠지게 된다. 지엽적인 통화로 인해봐야할 안전을 놓치게 되기 때문이다. 사회적 현안에 대한 우리의 시각은 어떨까. 사건과 사고 속에서 정작 우리가 꼭 봐야할 사안을 놓치고 있는 것은 없을까. 남북관계는 물론 우리를 둘러싼 국제관계는 또 어떠한가.
고릴라를 보지 못한 사람이 다수이고 고릴라를 본 사람이 소수일 때 그 목소리는 누가 보장할 수 있을 것인가. 개인의 사생활과 보호 받아야 할 정보에 대한 적절하지 못한 관심을 ‘알권리’로 포장하는 것에 대해서는 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무관심의 대상이 될 사안과 부주의맹으로 간과하는 중요한 사실을 분별할 수 있는 것은 그런 점에서 중요하다. 개인은 물론 이 사회를 위해서도.

 

장상록 /농업기술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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