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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돋이]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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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돋이]단비
  • 전민일보
  • 승인 2011.06.30 09: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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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비가 내렸다. 

목마르게 타들어가던 채소와 농작물 그리고 모든 초목들에게 생명수가 내렸다. 

얼마나 기다렸던 비던가? 

애타게 기다리던 비여서 더 반가웠다. 

시들어가던 식물들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의 마음도 함께 갈증을 느끼고 가슴을 조이며 타들어 갔을 것이다.

날마다 비를 기다렸다. 

아침에 일어나면 맨 먼저 창문을 열고 하늘을 쳐다보았다. 새벽은 연일 뿌옇게 엷은 안개가 내려 있었다. 

‘오늘도 비는 오지 않으려나 보다.’ 하며 애매한 창문을 닫고 하늘도 무심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쉰 살이 넘게 살다보니 그날의 날씨쯤이야 아침하늘을 올려다보면 대충 알 수 있다. 

한 번쯤 비가 흠뻑 내려주기를 간절히 기다리며 오랫동안 극심한 가뭄 때문에 하늘만 원망했었다. 

논농사는 저수지에 가두어 놓았던 물이 바닥을 드러내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러나 밭 채소나 농작물이 문제였다. 

조석으로 물을 뿌려주어도 그 순간은 갈증이 해소되는 것 같았지만 돌아서면 마찬가지였다. 

마른땅에 물을 주기란 무척 힘들고 열심히 주어도 턱없이 부족하기만 했다. 

이른 봄부터 텃밭에 여러 가지 채소들을 골고루 심었다. 100평쯤 되는 텃밭을 가꾸기란 소일거리 치고는 많은 양이었다. 

아욱 쑥갓 상추 고추 오이 가지 호박 등 그리고 방울토마토와 참외까지 심었다. 사위가 좋아하는 옥수수도 많이 심었다. 

새순이 나고 열매가 맺고 무럭무럭 자라기 시작했다. 

지나가는 사람들 모두 담장 너머로 바라보며 보기가 좋고 잘 가꾸어 놓았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런데 씨를 뿌리면 채소보다 잡초들이 먼저 나고 먼저 크기 시작했다. 잡초를 뽑고 김을 매는 일도 무척 힘들었다. 

새벽에 일어나 뽑아 주고 퇴근해서 뽑으며 텃밭에 온 정성을 쏟았다. 

아기를 돌보듯 텃밭에서 자라는 채소들에게 정을 주며 느끼는 재미는 쏠쏠했다. 

적당한 유기질 거름과 비를 흠뻑 맞은 뒤 비닐로 땅을 덮고 그 위에 채소들을 심었기에 가뭄에도 잘 견뎌 주었다. 

그러나 오래 지속되는 가뭄에 목이 말라 견디기가 힘들었던지 채소들의 잎이 배배 꼬이기 시작했다. 

밤에는 이슬을 머금고 잎이 펴졌다. 그러나 낮에는 수분이 부족한데다 강한 햇볕을 이기지 못해 시들시들해졌다. 

그렇게 힘든 날을 반복하면서 메마른 땅에서도 꽃은 피었고, 오이 호박 가지 방울토마토 등의 열매를 맺어가는 모습은 너무도 신비로웠다. 

방울토마토와 고추에 버팀목을 세워주면서 버팀목을 망치로 박다가 손을 때려 하마터면 큰일 날 뻔 했던 일도 있었다. 

조금씩 커나갈 때마다 쓰러지지 않게 버팀목에 묶어주고 옆가지는 잘라주었더니 어느새 내 키를 따라 잡으려고 한다. 이제 단비를 만났으니 얼마나 더 클까. 내일이면 남편 키를 따라 잡을 것 같다. 

아침부터 한 방울씩 내리기 시작하던 비가 정오가 가까워지면서 땅속에 스며들기 좋게 잔잔하게 내렸다. 

오후가 되면서 빗방울이 굵어지고 하수도로 빗물이 흘러 내려가기 시작했다. 긴 가뭄 끝에 내린 단비라서 하수도로 떠내려가는 물이 너무 아까웠다. 

하수도로 통하는 구멍을 막아 버리고 싶었다. 텃밭에 흡족하게 스며들게 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정말 이번 단비는 농작물이나 모든 초목들에게 보약이 되었을 것이다. 

집안에 있는 작은 텃밭을 가꾸면서도 이렇게 애가 탔는데 농부들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하니 농부들의 힘든 고충이 헤아려진다. 

살아가는 데는 어느 것 하나만 부족해도 이렇게 불편하다. 자연의 힘이 이토록 크다는 걸 알았다. 

이른 새벽 여느 때와 같이 습관처럼 텃밭으로 나갔다. 생기가 돋은 채소들을 보니 내 마음도 흡족했다. 

오이를 하나 뚝 따서 한 입 베어 물었다. 향긋한 오이향이 입안에 가득하다. 다른 때와 달리 신선함이 더 느껴졌다. 

정성을 들여 손수 키웠고 무공해라서 그랬을 것이다. 채소를 키워보니 오이같이 잘 크는 것도 없는 것 같다. 

어느 지방에서는 오이를 물외라고도 한다. 

물만 있으면 큰다는 오이가 물이 부족했으니 어느 채소보다 더 목이 말랐을 것이다. 쑥쑥 크는 모습이 눈에 보이는 것 같다. 자고 나면 아기 손으로 한 뼘씩은 컸다. 

내가 어렸을 때 할머니가 건강하게 잘 크는 나를 보고 좋으셨던지 오이가 크는 것 같다고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방울토마토가 있는 쪽으로 가 보았다. 밤사이에 흠뻑 단비를 마시더니 낯을 붉히고 있다. 정말 신기했다. 

채소들 모두 반짝 반짝 빛이 나고 밝은 초록빛을 띄고 있었다. 채소들이 좋아서 춤을 추는 모습이 보였다. 

밤사이에 쑥 자란 채소들을 친구들에게 나누어 줄 생각을 하니 마음이 뿌듯하다. 정이 넘치고 정을 나눌 수 있는 사람,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해주는 한없이 마음이 넓은 단비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정성려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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