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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혼(鎭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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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혼(鎭魂)
  • 전민일보
  • 승인 2010.10.25 08: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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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죽을 수 있지만 패배하지는 않는다.(A man can be destroyed but not defeated)"  [노인과 바다]에 나오는 너무도 유명한 말이다. 인생이 패배로 느껴지는 그 순간 인내와 용기를 떠올리게 하는데 이보다 더 적합한 말이 또 있을까? 그런 점에서 패배감을 느낀 인간은 죽음보다 더한 실존적 문제에 봉착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며칠 전 전주에서 발생한 실직가장의 끔찍한 선택은 모두를 우울하게 만든다.
 월 100만원 소득으로 힘들었을 가장의 무게가 실직으로 붕괴되어 버려서일까?
 ‘젊은 친구가 무엇을 하면 100만원 벌이를 못하겠나?’라며 꾸짖는 소리도 있다.
 그의 선택에 결코 찬성할 수 없다. 그런데, 그에게서 인내와 용기를 빼앗아 가버린 괴물은 무엇일까? 인간이 다른 동물과 구별될 수 있는 것은 약자도 살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장이 마련되어 있다는 것이다. 적자생존, 강한 자 만이 살아남는 진화론적 논리만이 지배한다면  어찌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 얘기할 수 있겠는가?
왜 그 길을 택했냐고 꾸짖는다. 왜 노력하지 않는지 묻는다. 이 세상은 충분히 살 만하다고 얘기한다. 그런데, 왜?
 강자에겐 많은 길이 보인다. 그들에게 약자의 선택이 때로는 미련하고 이해불가로 비쳐지는 이유이다. 빵을 달라는 소리에, 우유도 있고 계란도 있는데 왠 빵 타령만 하냐고 묻는 것은 ‘앙시앙 레짐(ancien regime)’에만 국한된 얘기가 아니다.
 일용직 노동을 통해 연명은 하겠지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두 아이의 미래가 자신의 삶과 같을 것이라는 절망이 있었다면 우리는 그에게 빚을 지고 있다.
우리는 그에게 죽음보다 더한 패배감을 안겨줬기 때문이다.
 헤밍웨이는 인간은 결코 패배할 수 없다고 얘기한다. 하지만, 모두가 그 얘기를 전가의 보도(傳家의 寶刀)로 사용할 수는 없다. 헤밍웨이가 그린 노인은 그런 말을 충분히 할 수 있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노인의 위대한 모습은 불굴의 용기와 인내 이전에 있다.
 그것은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과 배려다.
 지나치기 쉽지만, [노인과 바다]에는 다음 장면이 나온다.
노인이 조각배의 선구(船具)를 번거롭게도 매번 판자집으로 옮기는 것이다. 그런데, 이유가 남다르다. 몰래카메라가 없어서도, 양심 없는 사람들을 의식해서도 아니다.
노인은 마을 사람들이 선구에 손 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남들에게 훔치고 싶은 욕망을 내게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몰래카메라와 양심냉장고로 대변되는 인간상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인간에 대한 이런 깊은 애정과 배려가 있었기에 그는 자신의 노력이 헛수고로 끝나버린 순간에도 인간은 패배하지 않는다고 얘기할 수 있었던 것이다.
 ‘몰래카메라와 양심냉장고’가 가지는 미담과 감동이 허전한 것은, 그것이 인간에 대한 불신과 예외적 인간상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거기서 대부분의 인간은 패배자가 될 수밖에 없다. 진정 인간이 패배하지 않는 존재라면 그 출발은 인간에 대한 신뢰와 애정에 있다.
 인간의 노력은 그에 대한 합당한 결과가 있어야 한다. 문제는 모든 노력이 반드시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내 노력의 실패는 내 삶의 자양분이 되었노라고 인정할 수 있을 때 인간은 패배하지 않는 존재가 될 수 있다.
 실직가장에게 노력의 실패가 곧 패배감으로 다가왔다면 그것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어린 영혼들에게 신의 가호가 함께 하시길 바란다.

  장상록 / 완주군 농기센타 지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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