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의섭 시인 <장구한 파멸>
윤의섭 시인의 여덟 번째 시집 <장구한 파멸>이 출간됐다.
1994년 작품 활동을 시작한 윤의섭 시인은 생의 본질로서의 죽음을 꾸준히 탐구해 온 시인이다. 특유의 심미적 언어로 불안과 소멸의 미학을 구축해 온 그는 이번 시집에서 현대적 삶의 조건이 된 ‘인간성의 파멸’을 정면으로 마주한다.
시집은 알고리즘이 인간의 데이터를 분절하고 탈맥락화하는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과거와 미래의 감각을 잃고 영원한 현재에 머물게 된 인간은 시인의 시선 속에서 이미 ‘파멸 중’인 존재다. 시집의 첫 장이 ‘종말 중’으로 시작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장구한 파멸>은 냉소나 패배의 기록에 머물지 않는다. 시인은 알고리즘이 예측할 수 없는 인간의 ‘공상’을 시적 세계 한편에 심어두며, 인간성 회복의 작은 가능성을 더듬는다. 숏폼처럼 앞뒤가 잘린 장면만 반복되는 시대에도 시는 잊힌 감각과 목소리를 불러낸다.
시인이 주목하는 것은 기능의 회복이 아니라 ‘노이즈 되기’다. 예측 가능한 욕망과 효율의 체계 바깥에서, ‘멸망한 지구’, ‘어머니의 목소리’, ‘늙은 나무에서 물 흐르는 소리’ 같은 잔여의 감각을 붙든다.
<장구한 파멸>은 기계적 신성에 지배된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실존적 고투에 관한 비망록이자, 인간다움을 보존하려는 조용한 저항의 기록이다.
샤샤 대표작 <올빼미의 낮>
20세기 이탈리아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레오나르도 샤샤의 대표작 <올빼미의 낮>이 출간됐다.
레오나르도 샤샤는 시칠리아의 부패와 불평등을 집요하게 파헤친 작가이자 행동하는 지식인이다. 문학을 통해 추구한 정의를 현실에서도 실천하고자 하원 의원으로 활동한 인물이기도 하다.
1961년 발표된 <올빼미의 낮>은 당시 이탈리아 정부조차 존재를 부정하던 마피아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룬 작품이다. 출간과 동시에 큰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으며, 이후 마피아 서사의 출발점이자 정치소설의 고전으로 평가받아 왔다.
작품은 시칠리아의 작은 마을 버스 정류장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으로 시작된다. 건설협동조합 조합장 콜라스베르나가 총에 맞아 숨지고, 북부 출신 군경찰 벨로디 대위가 수사에 나선다. 그러나 사건을 목격한 버스 승객과 마을 사람들은 모두 입을 닫는다.
이어 같은 마을 사람 니콜로시가 실종되면서 벨로디는 두 사건이 연결돼 있음을 직감한다. 수사의 끝에는 지역 유지이자 실력자인 돈 마리아노 아레나가 있지만, 정치와 제도권의 보이지 않는 손은 진실을 향한 수사를 무력화시킨다.
제목 <올빼미의 낮>은 범죄가 더 이상 어둠에 숨지 않고 제도와 결합해 하나의 권력으로 드러나는 순간을 상징한다. 샤샤는 탐정소설의 형식을 빌려 '누가 범인인가'보다 '왜 정의가 실패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법보다 침묵이 강하고, 진실보다 권력이 앞서는 사회 속에서도 작품은 부조리에 맞서는 인간의 의지를 끝내 포기하지 않는다.
<올빼미의 낮>은 권력과 부패의 본질을 꿰뚫는 이성과 진실의 문학이다.
리처드 제니스 <페르난두 페소아 평전>
포르투갈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작가 페르난두 페소아의 문학세계를 집대성한 <페르난두 페소아 평전>이 출간됐다.
국내 독자들에게 <불안의 책>과 시집 <시는 홀로 있는 방식> 등으로 알려진 페소아는 세계문학사에서 비교적 늦게 고전의 반열에 오른 작가다.
문학평론가 해럴드 블룸은 그를 셰익스피어, 괴테와 함께 위대한 서양 문학가로 꼽았으며, 사후 발견된 원고들은 포르투갈 국보로 지정될 만큼 높은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이번 평전은 페소아 연구의 최고 권위자로 꼽히는 리처드 제니스가 썼다.
번역은 포르투대학교에서 페소아로 석사학위를 받은 김한민 역자가 맡았다. 그는 저자가 평전을 집필하던 시기 포르투갈에서 함께 지내며 페소아 문학에 대한 깊은 이해를 나눈 바 있다.
1400쪽이 넘는 이 책은 드라마틱한 생애보다 페소아의 다층적인 내면과 시적 세계에 집중한다. 페소아는 자신을 무엇보다 시인으로 여겼고, 시를 통해 존재와 비존재, 감각과 사유, 자아의 분열과 확장을 탐구했다.
특히 페소아 문학의 핵심은 70여 개에 이르는 이명에 있다. 감각주의자 ‘알베르투 카에이루’, 현대적 감수성을 지닌 ‘알바루 드 캄푸스’ 등 각기 다른 이름으로 창조된 작가들은 페소아의 문학세계를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저자는 페소아의 시가 시대를 앞서갔기에 동시대에는 온전히 받아들여지기 어려웠지만, 오늘날에는 언어 안에서 우리 자신을 발견하게 하는 힘을 지닌 문학으로 읽힌다고 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