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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의 말, '에린 왕자'로 태어나다···심재홍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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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의 말, '에린 왕자'로 태어나다···심재홍 작가
  • 이용 기자
  • 승인 2025.08.06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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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이 제2의 창작이라는 말 절감···전북 방언은 나를 있게 해주는 것"

전북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전북 특유의 말을 쓴다. 다른 지역 사람들은 전라도 사투리라고 하면 억양이 강한 전남 말만 떠올리기도 하지만 그런 오해 때문에 전북이 아닌 곳에서 전북의 말을 들으면 더 반갑기도 하다. 

전북의 말은 판소리의 언어이기도 하다. 전북 사투리를 모르는 사람이 있다면 판소리를 들어보라고 하면 된다. 이제 판소리는 세계를 강타한 K 신드롬을 타고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전북의 사투리는 글자로 표현하기 어렵다. 흔히 쓰는 사투리도 글로 옮기면 어색하다. 최명희, 채만식 같은 작가들이 전북의 언어를 문학적으로 승화시켰다는 평가를 받지만, 등장인물의 대사가 아닌, 작품 전체가 전북의 말로 된 경우는 거의 없다.

뜻밖에도 지금 서점에는 시작부터 끝까지, 오로지 전북 사투리로 된 책이 하나 있다. 프랑스 작가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가 ‘에린 왕자’라는 제목으로 출판됐다. 이 책을 번역한 심재홍 작가에게 작품과 전북의 말에 대해 물었다. 

- 전북 출신이시고, 외국에서 언어학을 전공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간단한 자기소개와 연구하시는 분야에 대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제 이름은 심재홍입니다. 전라북도 전주시에서 자랐고 지금은 미국 시카고 대학교에서 언어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한국어를 중심으로 통사론과 형태통사론이라는 분야를 전공하고 있습니다만 이전에는 만주어와 같이 한반도 주변에서 한민족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면서 살아온 사람들이 쓰던 말도 공부했습니다. 서울대학교에서 석사 과정을 다닐 때는 전라북도 지역어, 그 중에서도 임실 방언을 중심으로 석사 논문을 썼습니다. 이 때의 경험이 에린 왕자를 옮기는 데 있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제 전공에 대해 조금 더 말씀드려 보자면, 먼저 통사론은 인간 언어에서 문장이 어떻게, 그리고 어디까지 구성되는지 다루는 분야입니다. 예를 들어 한국어를 제1언어로 말하는 사람이라면 ‘철수가 거울 속의 자기 자신을 보았다’라는 문장은 자연스럽게 느끼실 거에요. 반면 ‘자기 자신이 거울 속의 철수를 보았다’라는 문장은 ‘자기 자신’과 ‘철수’가 같은 대상을 가리키는 상황이라면 어색하게 느껴질 것입니다. 두 문장에서 ‘철수’와 ‘자기 자신’이 같은 사람을 가리키는데도 왜 우리는 하나는 자연스럽게, 하나는 어색하게 느낄까요? 통사론은 이와 같이 문장이 어떻게 만들어지며 만들어진 문장이 어떤 원리를 따르는지 밝히고자 합니다.
형태통사론은 통사론에서도 문장의 구조가 문장을 이루는 낱말 꼴(형태)에 어떻게 나타나는지 다루는 분야입니다. ‘먹다’와 ‘먹이다’의 차이로 예를 들어 볼게요. ‘철수’라는 아이가 사과를 먹고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우리는 이 상황을 ‘철수가 사과를 먹고 있다’라는 문장으로 표현을 합니다. 그런데 사과가 너무 맛있었던 철수가 강아지 바둑이에게도 사과를 먹게 했다고 칩시다. 이 때 우리는 ‘철수가 바둑이에게 사과를 먹이고 있다’라고 표현을 할 수 있습니다. 문장에 ‘바둑이’가 하나 추가되었을 뿐인데 동사도 ‘먹다’에서 ‘먹이다’로 변한 것을 볼 수 있죠. 이처럼 형태통사론은 문장의 구조와 문장을 구성하는 낱말 사이의 관계에 관심을 가지는 분야입니다.

- 어떻게 언어학 공부로 진로를 잡으셨는지, 그리고 어떤 점이 매력적인지 소개 부탁드립니다.

언어학을 전공하게 된 것은 사실 우연에 우연이 겹친 결과였다고 해야 할 것 같아요. 고등학교 때까지 저는 사회 과학, 그 중에서도 정치학을 전공하기를 꿈꾸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대학교를 들어가기 위해 친 수학능력시험에서 원하는 성적을 얻지 못 하는 바람에 차선책으로 인류학, 그 중에서도 문화인류학을 전공하며 대학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죠. 문화인류학과에서 저는 그다지 뛰어나지 못 한 학생이었습니다. 하지만 문화인류학에서 제가 확실하게 얻은 것이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인간의 말 그 자체에 대한 관심이었습니다. 문화인류학은 어떤 집단의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연구자가 그 구성원의 관점에서 체험하고 생각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그 집단의 말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거든요. 그렇게 인간의 말이라는 것 자체에 매력을 느끼고 언어학 수업을 듣기 시작한 것이 저를 여기까지 끌고 오게 되었습니다.

언어학은 여러 가지로 매력적인 학문이라 생각합니다. 말이라는 것은 생각을 전하는 수단이고 같은 말을 쓰는 사람들도 말씨를 가만히 뜯어보면 조금씩 조금씩 다른 부분이 있거든요. 이렇듯 작은 차이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말을 이용해서 우리의 생각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다른 사람과 나눕니다. 그래서 저는 언어학이 우리가 인간으로서 가지는 공통점과 차이점 모두에 주목한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학문이라고 생각해요.

- 어떤 계기로 에린 왕자를 쓰게 되셨나요? 전북 방언 외에도 다른 여러 버전이 있다고 들었는데 이 프로젝트에 어떻게 참여하게 되셨나요? 

독일에 Edition Tintenfass라는 출판사가 있습니다. 이 출판사는 여러 가지 동화나 소설을 갖가지 말들로 번역해서 내놓기로 유명한 출판사입니다. 정확히 어떻게 시작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 출판사가 그 동안 내놓은 결과물 가운데 어린 왕자가 가장 성공한 것으로 알고 있어요. 저는 이 출판사를 언젠가 프랑스에 배낭 여행을 갔을 때 파리에서 들른 서점에서 알게 되었습니다. 언어학을 전공하는 사람으로서 정말 신세계였죠. 그 때도 돈과 제 가방의 빈 자리가 허락하는 한 최대한 많이 사 왔는데 더 사오지 못 해 아쉬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몇 년이 지나 우연히 소셜미디어에서 어린 왕자 경상도 사투리판이 나왔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어요. 바로 최현애 이팝 출판사 대표가 옮긴 애린 왕자입니다(제 에린 왕자와는 철자가 다른 바로 그 책입니다). 책을 사서 정말 한 편으로는 배를 잡으며, 한 편으로는 감탄하며 읽었어요. 왜 나는 이 생각을 하지 못 했을까 아쉬워하던 저에게 친구가 ‘아직 전라북도 사투리는 옮긴 사람이 없으니 네가 해 보는 것이 어떠냐’며 권유한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바로 한 꼭지 옮겨서 동생에게 보여주니 반응이 아주 볼 만하더군요. 이건 되겠다는 생각에 2021년 어느 날 최현애 대표에게 메일을 보내고 그 길로 Edition Tintenfass에까지 연결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반 년 동안 머리를 싸매고 씨름한 끝에 나온 것이 에린 왕자입니다.

- 많은 사람들이 ‘전라도 사투리’라고 하면 전남 방언을 떠올립니다. 전북 사람들도 ‘~랑께’, ‘~지라’ 같은 말을 쓰는 걸 기대하는 타지 사람들도 있고요. 학술적 관점에서 전북 방언만의 특징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전북 방언은 서남 방언의 일부로 중부 방언권에 속하는 충청 방언과 서남 방언에 속하는 전남 방언의 사이의 중간 방언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학술적으로 전북 방언이 전남 방언과 어떻게 다른지를 이야기하자면 끝이 없겠지만 그 가운데 첫째를 저에게 꼽으라고 하면 저는 억양을 꼽겠습니다. 기자님도 아시다시피 전북 방언은 전남 방언과는 구별되는 뚜렷한 특징도 가지고 있습니다. 전남 방언이 말머리를 높고 강하게 시작하여 강렬한 인상을 주는 반면 전북 방언에는 그런 특징이 상대적으로 덜 드러나죠. 그런 점에서 저는 억양만 놓고 보았을 때는 저는 충남 방언이 전북 방언과 더 비슷하다고 느낄 때도 많습니다. 할머니께서 군산 분이신데 몇 년 전 금강 건너 충남 서천에 갔을 때 할머니와 그곳 사람들 말씨가 거의 다르지 않은 것을 듣고 놀랐던 기억도 있을 정도니까요. 하지만 모든 전북 방언이 같은 억양을 따르지는 않습니다. 익산, 군산과 같이 충청도와 지리적으로 큰 장벽 없이 맞닿아 있는 곳은 충남 방언과 더 비슷하게 들리는 반면 남원, 순창과 같이 지리적으로 보다 고립되고 전남에 더 가까운 곳은 또 전남 방언과 완전히 같지는 않으면서 얼핏 비슷하게도 들리는 자기들만의 독특한 억양을 보여줍니다. 한 편, 전라북도에서도 무주, 진안, 장수, 남원과 같이 산세가 험하고 경상도와 맞닿아 있는 곳 중에는 경상도 방언처럼 말 뜻이 높낮이에 따라 달라져 버리는 곳도 있습니다.

한 편, 요즘 젊은 세대에서는 나타나지 않는 특징이지만 80대 이상의 고령층을 기준으로 할 때 전북 방언은 /ㅏ, ㅐ, ㅓ, ㅔ, ㅗ, ㅜ, ㅡ, ㅣ, ㅚ, ㅟ/ 등 한국어 방언 가운데 가장 많은 열 개의 단순 모음을 가진 방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반면 전남 방언은 같은 세대를 기준으로 할 때 /ㅐ/와 /ㅔ/를 구별하지 않아 아홉 개의 단순 모음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고요.

- 전북 방언이라고 해도 지역적 특색이 있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저는 장수 출신인데, 어릴 때 전주로 이사 왔을 때 이질적인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에린 왕자는 어떤 지역 방언을 바탕으로 하셨나요?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에린 왕자는 임실과 남원 방언을 바탕으로 전북의 여러 방언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현 상황에서는 나이 드신 어르신들이 방언을 가장 잘 보존하고 계신 것은 주지의 사실이지요. 그렇기에 에린 왕자는 오늘날 젊은 세대의 방언보다는 나이 드신 어르신들의 방언을 기준으로 옮겨진 작품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에린 왕자를 옮길 때 저는 주로 제가 만나온 어르신들이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생각하면서 작업을 하였습니다. 아무래도 제가 주변에서 만날 수 있었던 나이 드신 분들은 대부분이 남원, 임실이 고향이셔서 자연스럽게 남원, 임실 방언을 바탕으로 작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남원이 고향이신 제 할아버지, 그리고 석사 논문을 집필할 때 임실 및 남원에서 현지 조사를 하면서 만났던 어르신들이 가장 많은 영감을 주셨습니다. 그러니 에린 왕자에 나오는 문장들은 거의 대부분 남원 및 임실 방언의 통사 구조를 반영하고 있다고 보셔도 좋을 것입니다. 다만 개별 단어를 옮길 때는 전라북도에서 엮은 전라북도 방언 사전도 많이 참조를 하였기 때문에 단어 수준에서는 전라북도의 많은 방언들이 다 같이 녹아들어 있다고 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 전북 방언뿐 아니라 전 세계의 언어들이 중앙집중화와 지역화 사이에서 긴장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심지어 한국 표준어도 영어의 등쌀에 밀려 위기를 겪는 것 같기도 하고요. 지역 언어를 연구하고 보전하는 것이 왜 중요하다고 보시나요?

정확한 지적이십니다. 많은 경우 언어의 흥망성쇠는 그 언어 자체의 특성 때문이라기 보다는 각각의 말을 ‘누가’ 말하느냐에 더 달려 있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볼게요. 제게는 미국에서 나고 자란 친척이 한 분 계십니다. 60년대에 미국으로 이주하신 그 분의 부모님은 자녀가 미국에서 주류 사회에 잘 적응했으면 하는 마음에 독한 마음을 먹고 자녀에게 한국어를 가르치지 않으셨습니다. 그결과 제 친척 분은 지금도 한국어를 잘 하지 못 하십니다. 이는 한국어가 영어보다 어렵거나 못 나서가 아니라 이 분들이 놓여있던 상황이 불러온 결과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부모님 입장에서는 당연히 모어인 한국어를 가르치는 것이 훨씬 쉬웠겠지만 행여나 자녀가 한국어를 배우다가 영어에 외국인 억양이 섞여 들어갈까 염려했기에 당신들에게는 훨씬 어려운 영어를 가르치는 길을 택하신 것 같아요. 이 분들의 선택은 결국 미국 주류 사회가 외국인 억양이 섞인 영어를 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작용한 결과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제게는 지역 언어를 연구하는 것이 차별을 넘어 사회구성원 모두를 동등하게 존중하는 사회로 나아가는 일로 느껴집니다.

- 에린 왕자를 번역하면서 어떤 점을 가장 많이 신경 쓰셨나요?

에린 왕자를 옮기면서 원전 텍스트에 충실하면서도 방언의 맛을 살리는 것에 가장 큰 중점을 두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크게 두 가지 차원의 문제가 있었습니다. 먼저 원어와 한국어 그 자체의 차이에서 오는 문제가 있었고요, 그 다음으로 글말과 입말의 차이에서 오는 문제가 있었어요.

어린 왕자 원전은 영어와 프랑스어로 되어 있습니다. 방언까지 가지도 않더라도 두 언어 모두 한국어와 크게 다른 언어들이죠. 그렇기 때문에 원어 텍스트를 한국어로 단어 대 단어로 옮기는 것은 쉽지도 않지만 그렇게 한다 하더라도 굉장히 어색한 문장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영어와 프랑스어는 모두 문장에 주어를 필수적으로 요구하는 언어들인데요, 이를 한국어 문장에 반영하면 굉장히 어색한 문장이 됩니다. 예를 들어 소설 초반에 어린 왕자가 서술자에게 양을 그려달라고 하는 장면이 있죠. 이 부분에서 한 토막을 저는 이렇게 옮겼어요.

“인자는 나도 발동기란 놈을 끄:내야 되야서 참:덜 못: 허겄드만. 그래 갖고 이놈을 그:려 줬어.”

이 부분을 정말 프랑스어 텍스트 ‘그대로’ 옮기면 이렇게 됩니다.

“인자는, 참을성 부족, 내가 내 발동기으 탈거를 시작허기 바쁜게, 내가 이 그림을 그:렸어.”

따져보자면 한도 끝도 없이 기괴한 문장이지만 제가 강조하는 것은 프랑스어처럼 모든 문장의 주어를 다 번역해 줬다가는 한국어 문장이 매우 이상해진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한국어와 매우 다른 언어를 내용을 살리면서 자연스러운 한국어 문장으로 옮기는 것이 첫 번째 난관이었습니다.

다음, 글말과 입말의 차이에서 오는 문제는 방언이 기본적으로 입말의 성격을 강하게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나타납니다. 아시다시피 방언은 대부분 표준화가 되어있지도 않거니와 글로 적히는 일 자체가 잘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방언의 느낌을 잘 사리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입말로 살려야 한다는 문제가 되지요. 문제는, 입말에 글말에는 없는 담화 표지라는 작은 단어들이 무수히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어린 왕자가 여우와 만나는 장면에서 여우가 하는 말을 하나 따와 볼게요.

“내 비:밀은 이거여. 겁:나게 간단한 거다잉. 맴:으로 볼 적에만 지대로 볼 수 있는 벱이여잉. 중요헌 건 눈에 안 뵈아.”

이 부분은 여우가 어린 왕자에게 가장 중요한 가르침을 주는 장면이기 때문에 강조하는 담화 표지 ‘-잉’이 많이 사용되어 있습니다. 한 번 이것들을 다 빼 볼까요?

“내 비:밀은 이거여. 겁:나게 간단한 거여. 맴:으로 볼 적에만 지대로 볼 수 있는 벱이여. 중요헌 건 눈에 안 뵈아."

뭔가 맥이 좀 빠진 느낌이죠? 이 밖에도 담화 진행을 매끄럽게 하기 위해 ‘인자’, ‘근게’, ‘쫌”, ‘시방’, ‘양’과 같은 담화 표지가 전라북도 방언에서는 참 많이도 쓰입니다. 이 모든 것들은 물론 프랑스어/영어에도 없는 것이지만 한국어 표준어 번역들에도 아마 거의 번역은 안 되었을 거에요(직접 확인해 본 것은 아닙니다). 이 모든 것들을 제가 판단해서 넣어야 했는데 이를 어디까지 허용할 것이냐 하는 것이 제게는 쉬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에린 왕자를 옮기면서 번역은 제2의 창작이라는 말을 정말 몸소 체험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 전북 출신으로 서울에서 공부하셨고, 지금은 외국에 계십니다. 작가님께 전북과 전북 방언의 의미는 어떤 것일까요?

이제 삶의 터전으로서 전라북도를 떠난지도 거의 20년이 다 되어 갑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제가 전라북도에서 자랐다는 사실을 단 한 순간도 잊어본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서울에서 그렇게 오래 살고, 지금 미국에서 사는데도 불구하고 제가 어디에서 왔는지 항상 생각하게 되더군요. 서울에서도 그랬지만 미국에서 제가 교류하는 한국인들은 대다수가 서울 수도권 출신들인데 그 안에서 전라북도 출신이라는 것이 되려 특별하게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요즘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된 외국인들이 점점 많아지는 속에서 제 고향에 대한 이야기를 할 기회가 생길 때마다 자부심도 느껴지고요.

전북 방언도 마찬가지에요. 비록 타지 생활을 짧지 않게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제 말투에서 서울이 아닌 그 무엇인가가 느껴진다고들 합니다. 저 역시 젊은 세대이기에 제 윗 세대 분들에 비하면 방언을 많이 쓴다고 말할 수가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말씨에 방언의 흔적은 충분히 남아있는 모양이에요. 방언은 저를 저로 있게 해 주는 데 있어 뺄 수 없는 것이죠.

물론 이는 저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사람은 모두 저마다 조금씩 다른 말을 쓰며 살아 갑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을 떠올릴 때 그 사람의 말씨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되죠. 자기가 서울 말을 쓰든 지역어를 쓰든 우리는 모두 나의 말씨가 내가 살아오고 겪어 온 삶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모두가 쓰는 말은 모두 똑같이 소중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 현재 연구하시는 것은 무엇이신가요? 그리고 목표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지금은 한국어가 인간 언어로서 가지는 공통적인 특성과 하나의 언어로서 가지는 개별적인 특성을 한국어의 역사적인 변화라는 주제를 가지고 탐구하려 하고 있습니다. 작은 소망이 있다면 중세한국어라는 세종대왕 시대의 언어가 우리가 쓰는 현대 한국어로 변화한 것이 결코 우연적인 변화가 아니었으며 이 변화의 과정이 인류 언어가 보편적으로 갖는 특성을 드러내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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